우리는 자동차를 몰고 여행을 떠나기 전 자동차엔진룸의 보닛(후드)을 열어본다. 엔진오일, 냉각수, 각종 벨트의 상태 등, 맨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는 것들을 점검하고 양(量)이 부족하면 보충을 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교체하거나 수리를 한다. 물론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엔진룸을 열어보지도 않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배터리까지 점검하는 운전자도 간혹 있다. 엔진 시동을 거는 스타트모터를 돌리는 전기를 공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동차의 모든 전기 장치에 전기를 공급하거나 발전기에서 발생한 전기를 모아두어, 자동차에서 필요한 전기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배터리는 논의 한쪽 구석에 사용할 물을 가둬두는 둠벙과도 같이 자동차의 전기 우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배터리의 중요한 기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부위가 있는데, 그것이 배터리 터미널이다. 우리가 흔히 배터리 단자라고 부르는 곳이다. 전류가 이 터미널을 통하여 드나든다.
그러나, 터미널은 배터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항상 넘쳐나는 화려한 대도시나, 아니면 흙 때가 묻은 누렁이 한 마리가 누런 하품으로, 거리의 허리 굽은 노인들을 흘깃거리는 시골 소도시가 되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에는 버스터미널이 존재한다. 그리고 터미널주변은 항상 번잡하다. 괴산 터미널 주변은 택시 차부도 있고, 바쁜 승객이 후딱 먹고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올갱이 해장국집도 있다. 또한 작은 잡화점도 있다. 이곳에서 강남행 고속버스를 타고 두 시간 남짓을 달리면, 강남 센트럴시티 터미널에 도착한다. 강원도 강릉의 어느 바닷가에 있는 듯한 의상의 젊은 아가씨들, 여름 재킷과 번쩍이는 구두를 신은 중년남성, 한 톤 높아진 웃음소리의 아주머니들... 괴산 산골 터미널에서는 볼 수 없는 군상들이 떼를 지어 지나간다. 터미널 안에는 유명 음식점의 프렌차이즈 지점들이 즐비해 있고, 혈관을 흐르는 피처럼, 백화점과 지하철로 사람들이 흐르고 있다. 전류가 흐르는 배터리 터미널처럼....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의 얼굴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항상 들떠있다. 그 여행객들의 들뜬 미소가 내게도 소리 없이 퍼진다. 내 얼굴에도 비슷한 미소가 전염된 듯하다. 그러나 두어 시간 후면, 흙먼지 묻은 누렁이가 뒹굴던 괴산 촌구석 터미널에 내가 다시 서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