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원 Jun 29. 2023

종점(終點)-1

고속버스를 운전하면서 시골 버스기사였을 때를 종종 떠올릴 때가 있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등 도시의 대중 교통수단들은 승차시간을 놓치는 경우, 다음 차를 타면 된다.

 물론, 시간이 늦어져서 회사나 학교에 지각하고 그 결과로서는 기분에 상처가 나는 말을 들어야만 하지만...

 그래도 도시의 대중 교통수단들은 5분 이건, 10분 이건 배차 간격이 있어서, 참을성 있는 한계 내에서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시골버스는 뒤차라는 개념이 없다.

 보통 버스기사 한 명이 맡은 노선은, 온종일 기사 혼자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바로 앞서서 마을을 지나간 버스가 읍내를 한 바퀴 돌고, 기사가 터미널에서 커피를 한잔하면서

잠깐 쉬거나,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돌아서 그 마을 앞을 지나간다.

 이러하니 시골버스 배차시간이란 게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 세 시간이 될 때도 있다. 버스 기사가 승객을 안 모시고 가면, 그 승객은 다시 올 버스를 온종일 기다린다. 집에 들어갔다가 시간 맞추어 나오면 될 것을...그 승객이 나이가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라 할라치면, 한 번 집에서 나온 이상 다시 후퇴는 없다는 신념을 보여주시기라도 하신 것처럼 돌부처처럼

승차장을 사수(死守)하신다.


 그래서....

 늦더라도 모시고 간다.

 승강장 근처를 지날 때면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승강장 주변을 사주경계(四周警戒) 한다. 혹시 모를, 버스를 타려고 마을 어귀를 돌아 나오시는 할머니가 계실까 봐....

 내가 사는 범위(範圍)의 세상은 늦게 오는 사람도 함께 모시고 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야 함께 종점까지 갈 수가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셈법은 나의 시골버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집에서 늦게 나온 노인 한 명 때문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단 일분이라도 낭비할 수가 없다. 내가 늦게 가는 이유 및 모든 책임은 타인(他人)에게 있다. 더구나 그 늦어짐의 이유가 타인 때문이라는 것이 증명되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손해배상 청구도 서슴지 않고 해야 한다.


 내가 운행하는 고속버스의 배차간격은 한 시간이 보통이다. 출발 시간이 되었어도 화장실에 갔거나, 승차권을 사고 있는 승객들도 내가 인지하고 있다면 기다린다.

 

 버스기사가 버스승객들에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일,이 분 늦게 가더라도 우리 함께 갑시다. 종점(終點)까지 이렇게..."

작가의 이전글 본인은 잘 하는 줄 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