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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Feb 20. 2024

탈고 안 될 전설

시골버스를 그만둔 지금도 그때의 토막이야기를 들추어 보고는 괜한 미소를 지을 때가 있다. 그러나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마음속 한구석을 아프게 하는 추억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책으로 편집할 당시 편집장이 여성단체나, 장애인 단체에서 고소나 고발을 할 수도 있는 내용의 글이 있다고 과감하게 쳐버린 글 중의 하나가 아닐까 예상하는 글이다.

예전 교과서에 '탈고(脫稿) 안 될 전설(傳說)'이라는 수필이 있었다. 나는 이글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사람의 내면>

지금까지 그녀를 그렇게까지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

외모로는 일반인과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단지, 머리 모양만이 특이하였다.

삭발이다.

그녀의 가족이 그녀의 외출을 삼가라고 강제로 머리 모양을 그리하였는지... 아니면, 본인의 헤어스타일의 취향이 그런지는 가늠되지 않으나, 내 예상으로는 전자의 경우가 아닐까 생각했다.

선천적 농아인(聾啞 人)이어서 언어장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청각장애인이자 언어장애인이라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 했다.


나는 그녀를 오늘 처음으로 자세히 봤다.

나이는 30대 후반쯤 되었을까...

160cm 정도의 키에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로, 얼굴도 그렇게 밉상은 아니었고, 그 또래의 다른 여자와 비교해도 뒤처지는 외모는 아니었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시폰(Chiffon)원피스 치마와 꽃무늬 모자...

그것이 평상시 일반적인 그녀의 패션이었다.

꽃무늬 모자는 뒷모습만 봐도 그녀인지 아니면 다른 여자인지 알 수 있는 상징처럼 내 기억에 각인되어 있었다.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자 언어장애인... 그녀가 버스를 타고 괴산 바닥을 유람하는 이유에 긴 설명이 필요치 않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시골 버스에 몸은 싣고 돌아다니는 괴산 바닥은 그 여자의 유일한 해방구 일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도 가끔 내가 운행하는 버스에 승차한 적이 있었다.

버스 요금을 내지 않기도 하였고, 버스 가장 뒷좌석에서 누워있거나, 가운데 좌석에 책상다리로 앉아 있기도 했다.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있노라면, 폭 좁은 붉은 색깔의 속옷이 언 듯 보이는 것도 같았고, 그 여자는, 기운이 쇠락한 늙은 너구리 같은 버스 기사들의 음흉한 눈길을 은근히 즐기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버스 룸미러로 쳐다보는 버스 기사의 눈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지도 않았고, 버스가 급 정지시 일어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녀와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일반인 같은 대화가 되지를 않으니 답답하였지만, 애써 성질을 죽이고 종이와 펜으로 필담(筆談)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글씨체는 의외였다.

많은 반복적인 학습과 필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필체였다. 거기서 나는 그 여자의 지적 수준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고 그 여자의 기이한 행동은 다른 이들, 특히 버스 기사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 여자의 기이한 행동은 나뿐만 아니라 그 노선을 운행했던 다른 버스 기사들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 쪽 노선은 오랫동안 운행했던 동료기사의 말을 들어보면, COVID-19가 창궐하는 요즘 시기에 마스크도 없이 버스에 승차하는 그 여자가 그 노선의 최고 진상 승객으로 등극했다고 한다.

그 기사 중에 나 말고도 대화를 시도했던 기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말이 안 통하고 답답한 와중에, 그녀의 표정이 기사들을 놀리거나 비웃는 모습이어서 그 여자와의 대화는 자신도 모르게 비속어와 욕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했다.


오늘 내가 운행하는 버스에 바로 그 여자가 탔다.

물론, 마스크도 하지 않은 얼굴로 버스요금도 내지 않고 버스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몸짓으로 마스크 착용과 버스요금을 내라고 요구하였고, 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착용하고, 오천 원 지폐를 보이면서 도착지에서 교환하여 내겠다는 표시를 두 팔로 하였다.

드디어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승객들의 하차를 위하여 버스 문을 열었다.

다른 승객들과 섞여 버스를 황급히 내리는 것이 룸미러로 보였다.

당연히 도착지 편의점으로 환전하러 가는 것으로 알았으나, 음성터미널 옆 편의점을 지나쳐 반대편으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어허! 이거 봐라!'

선배 기사들이 이야기하던 기사를 골탕먹이려는 짓으로 보여, 나도 재빠르게 버스에서 하차와 동시에 그 골치가 아픈 승객을 뒤쫓아갔다.

신발을 벗지 못하는 차 안에서 발의 열을 식히려고 싣고 있던 슬리퍼가 그녀를 쫓아가기에 방해물이 되고 있었다.

얼마나 빨리 도망갔을까?

그 여자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를 않았다.

음성터미널 앞 오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처럼 오거리 중앙에 멍하니 서서 방사선으로 뻗은 도로들을 눈길이 닿는 끝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저 멀리 그 꽃무늬 모자가 어렴풋이 보인다.

부지런히 쫓아가 앞서 가는 여자의 얼굴을 대면하였다.

나를 보고 흠칫 놀라기까지 하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잘도 쫓아왔네!'


그 여자의 표정에서 이런 말이 읽혔다.

그 여자를 먼저 걸어가게 손짓을 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그 여자의 뒤에서 걸었다.

가끔씩 내가 쫓아 오는지 뒤돌아 보곤 알 수 없는 비웃음을 나에게 웃어 보였다.


그 여자가 멍청하고 순진한 버스 기사를 놀려먹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답답한 처지를 잠시나마 잊기 위한 쾌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핸디캡을 이용하여 상대를 놀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예전의 필담에서 보았던 그 여자의 필체가 말해준다고 것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증거였다.


나는 지금껏 그 여자에게 예의 없이 대하거나, 그 여자가 알아들었던 아니던 상관없이 하대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지옥 같은 삶을 살았을 그 여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겼다.

나는 그 여자를 볼 때마다 소년기에 읽었던 헨렌 켈러(Helen Adams Keller)의 전기를 떠 올렸다. 나는 헬렌 켈러의 전기를 읽은 밤에는 꿈을 꾸었다. 좁다란 관속에 산채로 갇히는 꿈을...

그러나 나를 비웃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얼굴에 손이 올라갈 뻔했다. 지금까지 내 생애에 그렇게 화가 났던 적은 없었다. 아니, 미치도록 폭력을 쓰고 싶었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내 심연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던 악마를 마주하였고, 지금까지의 내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처참 하리만큼 초라하게 느껴지는 나 자신을 간신히 추스르고, 나는 음성터미널로 그 여자와 함께 돌아왔다.

그러나 음성터미널 도착한 그 여자는 내가 한 눈파는 사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 아주 쓸데없는 멍청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괴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버스를 주차해 놓았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지나치던 편의점 창문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고서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하고 있는 그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천원짜리 몇 장과 동전 몇개...

그 여자가 받은 거스름 돈이다.

그 중 천원짜리 지폐 두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버스비가 천 오백 원이니 오 백 원을 거슬러 달라는 눈치다.

'편의점에서 분명히 거스름돈으로 동전을 받는 것을 보았는데...'

배가 나온 반백의 버스기사가 조금 떨어져서 주차된 버스의 환전기까지 뒤뚱거리며 뛰어가서 동전을 바꾸어, 다시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꼬라지를 보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바지 주머니를 뒤져, 다행히 갖고 있던 백원짜리 동전 여덟개를 꺼냈다. 그 여자가 보는 앞에서 동전을 세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연신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으며, 눈으로는 버스기사의 동전 세는 얼굴을 훑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눈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 싸구려 동정심과 가식은 집어치워! 너도 다른 기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


나는 그 동전을 그 여자의 손바닥 위가 아닌, 바닥에 내 팽개쳤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로 향해갔다.

음성과 괴산을 오가는 도로는 천정과 땅바닥을 오가는 것처럼 한없이 출렁거리며, 오늘따라 유난히 길고도 멀었다.

괴산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속에는 꽹과리 소리같이 쇠 두드리는 울림이 나를 괴롭혔다.


'나도 같은 놈이야!'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어둠이 뱀처럼 구불거리는 시커먼 포장도로를 따라 퍼지면서, 나는 그 어두운 길을 따라 괴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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