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원 Apr 22. 2024

내게도 사랑이...

이 세상의 모든 만물(萬物)은 거의 암.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자웅동체인 생명체도 존재하니 백퍼센트라고 말할 순 없다.

 생명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존재하는 기계나 기구, 혹은 건축구조물조차도 유심히 살펴보면 암.수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동하는 기계를 결속하는 볼트,너트는 물론이거니와 회전하는 기계의 축(Shaft,軸)을 지탱하고, 작동하는 기계에 매끄러운 회전질감을 선사하는 베어링(bearing)의 구조 또한 쇠 구슬이 숫놈의 역할을, 안쪽과 바깥쪽에 감싸는 외피(Casing)가 암놈을 역할을 함으로써 베어링에 결속된 축이 원활하게 회전하도록 돕는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 해준다.
 강이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교량도 물론이거니와 너무도 높아만 가는 어지러운 도시의 빌딩들도 이러한 암.수의 원리로 건축되고 있다.
 예전 고등학교 때 배운 효소(enzyme)가 기질과 결합해서 효소-기질 복합체의 형성한다는 설명의 그림에도 암.수가 합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 중 그중 최고를 뽑으라면 '음.양의 조화'라 얘기하여도 무방하리라...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는,
 남자가 여자를 그리워하고,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을 인력으로는 막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평생을 여자(어머니)에게 기대어 자라고, 여자(아내)의 손아귀에서 늙어가는 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증스러운 나의 능력만으로는 세상의 이치를 거역할 수가 없음을 요즘 들어 더욱더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 지구의 북반구는 산천의 모든 만물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하여 꽃을 피우거나 화려한 몸짓으로, 암놈은 수컷을, 수컷은 암놈을 애타게 찾는 계절이 도래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강남 세트럴시티 터미널에 돌아다니는 여성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어둡고 칙칙한 겨울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화려하고 살랑거리는 옷으로 성장(盛裝)했다.

 독자들 께서는 익히 아시겠지만, 나의 직업은 괴산과 강남 설트럴터미널을 오가는 고속버스 기사다. 내가 오가는 괴산에는 대한민국의 초급장교를 양성하는 군사학교가 있다. '학생중앙군사학교' 소위 '문무대'라고 부르는 곳이다. 군부가 정권을 가졌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교련 과목 1학점을 취득하기 위하여 일주일 동안 갖은 수모와 훈련을 감내하던 장소이었다. 지금은 일반학생의 군사교육은 사라지고 초급장교들을 양성하는 역할만을 하고 있다.

 바로 이 학교에...
젊은 장교 후보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물론, 여학생도 있지만, 다수는 남학생들이다.
짧은 훈련 기간 동안이나마 여자 친구나 애인과 떨어져서 지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일 것이다.
 강남터미널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훈련을 떠나 보내는 커플들의 눈물겨운 이별 장면의 모습이 목격된다.
 끌어안고 있는 것은 기본이요,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입을 맞추거나, 심지어 서로의 몸을 더듬기도 한다. 살랑거리는 봄옷으로 감싸고 있는 육감적인 몸을...
고속버스기사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그 버스 앞에서 한 커플이 자신들의 애정행각에 도취하여 버스 출발시각이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버스에 오를 생각을 안한다
 눈꼴이 시었는지, 버스 문 옆에 서 있던 검표원이 버스 옆면의 트렁크를 쿵 소리를 내어 닫으며 한소리 했다.
'기사님! 예약승객 중 아직 한 사람 안 왔는데 출발시각이 되었으니 가셔야죠!"
 그제서야 얼굴이 벌그레하게 상기된 그 젊은 남자친구가 뛰어오르듯이 버스에 올라왔다.

 내가 한마디 했다.
 웃는 얼굴로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아직 2분 남았는데...ㅎ.ㅎ.ㅎ"

 버스 맨 앞좌석 네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던, 괴산 간다던 오십 대 아주머니들 4명은 동시에 키득거리고...
 드디어 버스가 터미널승차장을 미끄러지듯이 뒤로 물러나오자, 승차장에 홀로 남겨진 애인은 연신 손을 들어 손 하트를 버스에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손 하트를 수신 해야 할 당사자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이 룸미러로 보였다.

'하! 녀석 순진하긴!'

사월의 어느날
따뜻한 오후...
잔인한 사월은 오늘도 그렇게 흘러간다.



작가의 이전글 탈고 안 될 전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