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를 중국 당나라에 대해 비유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군기(軍紀)가 빠진 군을 빗대어 '당나라 군대' 라 하거나, 주변 사람이 현시대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한다면, "지금이 무슨 당나라 때냐?"라고 면박을 주기도 하며, 버스가 고장으로 속을 썩이면 "이 똥차는 당나라에서 만들었나? "라며 비웃기도 한다.
그 당나라가 조선에 문학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쳐, 우리가 이두(李杜)라 일컫는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를 괴산에 사는 촌부도 알고 있으니, 비록, 내가 중국을 숭상하기까지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사실인 점은, 원통하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다.
나의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도 당나라 때의 시인이었던 두보의 시를 번역한, 두시언해(杜詩諺解)란 챕터가 존재했다. 정식명칭은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라고들 하던데, 이하부터 '두시언해'로 지칭하도록 하겠으니 독자로 하여금 저에게 시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간에서 평하기를 ' 시선(詩仙)이라 불리던 이백은 일반적인 관행과 권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술과 벗하여 살면서 모든 욕망과 불만을 시로 써냈다'고 하였고, 이에 반해 두보는 성격이 강직하고 아첨을 싫어했기에 과거에 급제했어도 높은 벼슬을 차지하긴 어려웠으며, 주로 백성의 가난하고 궁핍한 삶을 시로 썼다고 하였다.
학창시절 두시언해를 강의하시던 선생님 왈 " 이백은 술 한 잔에 詩 한 편을 썼을 정도의 천재성과, 한 번 지은 시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 건방짐을 동시에 지녔다.
그에 반해 두보는 지지 궁상 하여 머리를 쥐어짜 내놓은 시구도, 골백번 다시 퇴고(推敲)하고 다듬어 시를 완성했다고 하니, 오죽하면 시성(詩聖)이라고 하지 않더냐! 이 지점이 조선사회의 코드와 맞았던 이유로 하찮은 이백은 건너뛰고, 굳이 두보의 시를 해석하는 것에 이르러, 현시대의 너희가 위대한 두시언해를 배우는 거다" 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이백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설(說)이기는 하지만, 그 중 유력한 하나의 썰은 '이백이 술에 취해서 호수에 비추어진 달을 잡으러 물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더라' 이다.
어제,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술이 덜 깬 멧돼지가 "호수 위 달그림자 쫓는 느낌, 실제 일어난 일없어..."
라고 씨부렁거렸다고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南營洞 對共分室)의 취조실 욕조 물에 투영된 전구그림자에 석열이 대가리를 처박아 익사하게 하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법치주의 대한민국에서 저들과 같은 수준의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아마도, 지금 윤석열의 머릿속을 유추해 보면, 자신의 입은 이태백이요, 몸은 당현종(唐玄宗)이며, 같이 사는 여자는 양귀비(楊貴妃)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말을 법정에서 하겠는가?
에이! 당나라 떼 놈 같은 인간"윤석열!"
어찌되었건 그놈의 '당나라'는 어감(語感)상으로 우습기도 하지만, 입 바깥으로 내뱉는 순간,
배설의 쾌감을 나에게 선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