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잠자는 차속의 공주>

by 한지원



내가 예전에 읽었던 동화 속 공주들의 주된 캐릭터는 잠을 자는 것이다.
백설공주도 잠을 잤고, 숲 속의 미녀도 잠을 잤다. 유아기 때만 눈부신 외모를 잠깐 보여주고는, 세상 물정을 알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 잠을 잤다. 이 잠자던 여성들은 한결같이 모두 미인이다.
예전 광고 카피 중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문장도 생각나게 한다. 잠을 많이 자서 미인이 되었는지, 미인이 원래 잠이 많은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잠자는 것만으로도 피부미용에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주가 잠에서 깰 때가 되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아주 잘 생긴 왕자님이다. 여염(閭閻)집 남정네들의 질투와 타도의 대상인...그리고 이 왕자는 꼭 백마를 타야 하며, 길을 잃고 숲 속을 헤매야 한다.
인류가 동화를 창작한 이래로, 동화 속의 3대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하나인 공주의 침대위치가, 왕자의 음흉한 레이더(RAdio Detection And Ranging)에 걸려 발각되고,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던 공주는 부(富)와 권력(權力)과 조각상 같은 외모를 지닌, 왕자의 진한 키스 세례를 받고 드디어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불라, 불라...
그 이후의 이야기는 너무 상식적이고 예상 가능한 이야기이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꼭, 공주나 왕자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예쁘고 잘 생겼다거나, 젊은 사람이 노인들보다 외모가 우월하다는 통계나 보고서가 없는 것으로 보아, 미인이 나이나 신분으로 구분을 지어지는 것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젊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생물학적으로 노인들보다는 상대적 우위(優位)일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시골버스에서 고속버스로 직장을 옮기면서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변화 중 미인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연령대가 바뀌면서 허리 구부러진 노인들보다 아름답고 싱싱한 젊음을 가진 이들이 내 버스 안을 채우게 되어, 예전보다 미인들이 많아졌다고 느끼게 되는 편견이기도 하다.
센트럴터미널에서 한 젊은 여성을 봤다.
힐끗 지나가는 눈길로 보내기는 아쉬울 정도의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한 번 더 봤다.
이 나이에 이런 고백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이 여성이 내 버스를 탔다. 완전 계(契) 탔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오~우! 예스!"
더구나, 그 여성의 자리는 조수석 첫 번째 좌측 자리다. 버스 기사의 룸미러와 대면하는 버스 안에 몇 개 안되는 자리 중의 하나이자, 승객의 얼굴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

버스는 터미널을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전용차로 한 자리를 차지한 버스는 점진적으로 가속하여 시속 100km를 넘나들며 20분쯤 달렸을까...
이때쯤이면, 천하장사 삼손도 천근만근이 되어버린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못할 지경이 되어, 버스 승객의 99%가 취침 상태로 되는 시간...

룸 미러로 그 여자가 보였다.
붉은 앵두 같았던 입은 반쯤 벌어졌고, 한쪽 눈은 반밖에 감기지 않아 흰자위가 희번덕거리며, 고개는 좌로 15°쯤 부러져 보인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개뿔!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방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