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아빠의 직업란을 기재하는 서류가 있는가?
지금은 만 서른이 넘어버린, 큰딸의 유치원 혹은 초등교 시절에도, 아빠의 직업을 써넣었던 기억이 없다.
짐작컨데, 아빠의 직업을 그렇게도 탐구하고, 궁금해하던 가정통신문은,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 벌써 오래전 없어졌을 거라 여겨진다.
예전 내가 어릴 적...
그야말로 호랑이가 전자담배 피던 시절에는,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거니와 군대 훈련소에서까지, 모든 사회조직이 구성원들의 부친 직업에 지대한 관심을 뒀었다. 부친의 직업에 따라 자식들에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부조리한 군사독재 시절을 살아온 우리 또래들은 백 퍼센트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든든한 공무원, 그것도 내로라하는 권력기관의 공무원을 부친으로 두었던 나는, 육체적 체벌이나, 상대적으로 억울한 대접을 받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그러한 시절을 보내게 해주신 나의 아버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살던 동네는 잘사는 부촌이 아니었다. 아니, 힘없고 돈 없던 서민들이 살던 산동네였다.
'건축업' '회사원' '자유업' 등은 내가 흘깃 훔쳐보았던 친구들의 가정통신문에 씌어있던 아빠들의 직업이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이나 사회적 구조를 보건대, 소위, 막노동 일용직이 태반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주변의 친구들과 달리, 부친의 직업란에'공무원(ㅇㅇㅇ)'이라고 쓰여있는 가정통신문은 누가 볼까 봐 두 번, 세 번 접어서 선생님에게 제출하였다. 왜 그리도 창피하였는지...
살아생전 나의 부친이 직접 써서 나에게 주셨던 가정통신문을 나는 기억한다. 그때 나를 바라보시던 부친의 눈빛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아빠가 있으니 어디 가서 주눅이 들지 말라!'
지금 나는 버스 기사를 한다.
나는 버스기사란 직업이 부끄럽거나, 하찮은 직업이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나의 자식들의 눈이 두렵다.
지금, 나도 우리 아들이나 딸에게 나의 선친이 나를 바라보았던, 그 눈빛을 보낼 수 있을까?
남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험악한 동네 양아치로 보이고 싶은 사람은 정신분리불안 환자이거나, 윤석열 둘 중의 하나다.
나는 항상, 우아하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를 소망한다.
그 이미지를 빌드업하기 위하여, 운행하지 않는 자투리 시간에는 버스의 운전대에 책을 올려놓고 읽는 척을 한다. 주변의 기사들이나, 터미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에게는 미미하게나마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는 분위기다. 이미지 쇄신을 위하여 앞으로 2~3년 정도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이제 갓 삼십 대를 넘어선 큰딸에게 우아(優雅)한 지성(知性)을 지닌 아빠의 이미지를 강요하기에는 나의 실체가 탄로 난 지 오래다. 우아한 지성보다 넘치는 지성(脂性,개기름)의 얼굴을 지닌 꼰데로 바라보는 것 같다.
뭐 그리 억울하지는 않다. 사실이니까!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군대를 갓 제대한 아들놈이 있다. 이놈에게는 이직도 아빠의 우아한 지성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기회가 있다. 아니, 나는 있다고 믿는다.
이 친구가 가끔 아빠 버스를 타고 센트럴터미널까지 간다. 그럴 때면 서로 신경 쓰지 않도록, 맨 뒷자리에 탄다. 나도 신경 쓰지 않아서 좋고, 그 친구도 그게 편해 보인다. (괴산에서 센트럴터미널로 갈 때는 지정좌석제가 아니다.)
" 오늘은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타고 갈래?"
" 왜? "
" 가끔 신발 벗고 가는 아줌씨들이 있어서..."
아들놈이 음흉한 미소를 띠며...
"오키! 아빠! 뭔 말인지 이해했어! "
사실, 버스 승객 중에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매너의 소유자들이 가끔 존재한다. 신발을 벗고가는 승객도 그 중 하나다. 버스에 미리 타고 앉아있다가 출발시각 임박해서 화장실 간다고 하는 승객은 애교에 속한다. 터미널에서는 조용히 계시다가 버스에 오르면서 전화 통화를 그래 고래 큰소리로 하기, 버스 좌석에 앉아서야 김밥, 햄버거 등을 꺼내놓고 먹기 시작하기...
고속버스는 유리창이 밀폐구조이고, 환기시설도 에어컨 등의 효율을 고려해서 그런지, 그리 강력하지가 않다. 결국, 버스 안의 냄새는 돌고 돌아 운행을 끝마치고 종점에 들어올 때까지 콧속에 맴맴 하면서 머릿속을 지끈지끈하게 한다.
상황이 그러하니 기사가 잔소리하지 않겠는가?
승객들과의 불편한 실랑이 모습은 보여주기 싫은 아빠의 마음을 아는 아들이,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가는 것이 너무도 예뻤다.
그러나, 신발 벗고 꼬랑내를 솔솔 풍길, 미래의 승객과의 실랑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하여 앞자리를 아들에게 권유한 이유다.
뒷자리의 아들이 평상시에는 보지 못했던, 아빠의 실체가 오늘도 어김없이 재연되었지만, 이어폰을 귀에 착용하고 잠을 자고있던 아들은 다행히도 인지하지 못함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무사히 터미널에 도착하여...
승객들은 모두 하차하고, 버스에는 둘 만 남았다.
그리하여 금쪽같은 두 시간여의 휴식시간에 아들과 식사를 하기로 했다. .
버스를 주차하고 운전석에 앉은 채로 부지런히 일보를 정리하면서...
" 아들! 뭐 사줄까? 뭐 먹고 싶은데? "
"부대찌개? 순댓국? 뭐 먹을까? "
"..."
묵묵부답.
'이놈이 또 자나!'
돌아다 보니, 아들은 통화 중...
엄마에게 도착보고를 하는 모양이다.
"엄마! 아빠는 완전 깡패야! 승객들 주눅이 들게 뭐라고 큰 소리로 야단치고, 대답 안 하면 윽박지르고... 아주, 버스 안의 독재자야! "
'에잇! 마지막 우아(優雅)도 물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