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K-고딩으로 살아남기란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까 봐
고등학교 3년 동안 한 공부가 앞으로 30년 간 할 공부보다 큰 역할을 해준다더라. 지금 공부하면 나중에 편하다. 대학을 가야 사람 구실을 한다. 사실 이런 말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참 많이도 들었다.
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보다는 취급이 조금 나은 특목고이지만 서울의 상위 고등학교나, 용인의 모 고등학교, 과고, 영재고보단 한참 뒤떨어진다고 불리는 학교에 진학했다. 성적은 나쁘지 않은 194점 후반 대였지만 수학에 B가 있는지라 지금 이 학교보다 더 나은 곳을 택할 수가 없었다. 다니던 중학교 옆 고등학교는 죽어도 가기 싫었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온 이곳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불행 전시도, 우울 조장의 목적도 아니지만 참 많이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아침자습을 위해 7시 40분에 등교해 학교서 밤 11시까지 이리저리 구르다가 12시에 소등하고 잠에 든다. 또다시 6시 20분에 되면 기상송이 울린다. 쳇바퀴 같은 삶의 연장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12시 정시 취침을 권고하고, 그 이후가 되면 지도 대상이 되지만 수행 평가와 지필고사, 기타 활동을 병행하려면 야자 시간을 넘어서서 잠마저 포기하는 지경에 다다른다.
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6시간 수면이라고 말하면 다들 "그래도 꽤 자네?"라고 답하지만 그건 단순히 주어진 시간이지, 잘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주어진 6시간을 꽉 채워서 자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공부를 포기한다. 둘째, 머리가 좋으면 된다.
둘 다 흔히 학교에서 보이는 케이스다. 특목고에 등 떠밀려 오긴 했지만 굳이 공부에 힘쓰고 싶지 않아 맘 편히 자는 사람이 있는 데에 반해, 밤잠 줄이지 않아도 참 잘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인 나는 왜 잠을 줄이는가.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머리는 특출 나게 좋지도 않고, 그렇다 해서 공부를 포기할 깜냥도 안 된다. 용기도 없고 깡도 없는 겁쟁이다.
우리 학교 진로 선생님께선 세상을 살려면 용기 있게 도전하라고 했다. 그 용기 있는 사람의 예시는 테슬라의 엘런 머스크였다. 그분은 우리에게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흔히들 말하는 미라클 모닝이다. 알고 보니 오후 8시에 잠드시더라. 한창 시험 기간이었던 탓에 새벽 4시에 취침했던 난 조용히 혼자 웃을 수밖에 없었다. 3년 동안 공부하고, 대학에 가서 학사모를 쓰고, 새벽 4시에 일어나면 나는 엘런 머스크가 될 수 있을까?
이것 또한 지나가리-
하는 마음으로 버티다 보면 고3이 되고 수능이 끝나고 어른이 된다고 했는데 이 시간이라는 게 참 안 간다. 정철은 무엇 때문에 드넓은 만주 벌판 관광이나 하지 왜 굳이 기행가사를 써서 우릴 이리도 괴롭게 하는 걸까. 만고 불문의 고등학생들이 가지는 불만 사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제인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까 봐'는 나의 룸메이트 미미 양이 만들어준 한 마디다. 아직 18년도 꽉 채워서 못 살았는데 세상살이 조금 각박한 거 같다. 앞으로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고난에 더 능숙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능숙해진 나는 세상살이 힘겨움을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아니면 무뎌져 버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