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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평 Mar 06. 2023

시험 기간, 어즈버 고난의 연속이여

아으 다롱디리

시험 기간, 반도의 학생들이 고뇌에 차서 고통을 만끽하게 하는 그 시간이 어김없이 찾아오고, 지나갔다. 벚꽃이 가장 만개했을 때 우릴 가둬놓더니만은 한낮의 태양이 작열할 때쯤 되어 우리를 풀어주더라.


우리 학교는 한국에 많고도 많은 특목고 중 하나로  수시 중점 학교 중의 수시 중점 학교다. 생기부도 잘 채워주고, 다양한 전공과목을 배울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바꿔 말하자면 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만큼 많은 양의 시험 범위가 있다는 단점이 된다.


시험 기간이 되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딱 세 가지 있다. 첫 번째, 몬X터 노란 캔. 작년엔 흰 캔이나 분홍색 캔이 분리수거장에 즐비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노란 캔이 트렌드인가 보다. 두 번째는 잠 안 오는 껌. 누가 발명했는지는 몰라도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많이 소비하고 있다. 그쪽 회사 유리창의 한 짝의 4분의 1 정도는 내 친구들이 닦아줬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편의점 발 커피. 시험 기간 살찌는 이유 중 일, 이 위를 다투는 요인을 생각해보면 커피가 빠질 수 없다.


가뜩이나 씁쓸한 인생, 커피마저 쓰면 인생이 고달프지 않겠냐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아선 믹스커피나 플라스틱 통에 담긴 설탕 반, 카페인 반의 커피가 주류다. 하루에 한 두 컵, 두 세 포 정도 마시다 보면 1, 2킬로는 우습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밤에 살 찌우면서 안 자고 공부하는 애들이 있는데 살 안 찌고 싶다고 누워서 팔자 좋게 자면 그거야 말로 멍청한 짓일지도 모른다.


아, 쉽지 않다. 진심으로 어렵다. 어떻게 한 달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시험 범위는 과목 당 ppt가 150페이지를 넘고, 영어 지문 120개에 외부 지문 절반, 해외문학 작품까지 더하면 차라리 날 죽이소, 하는 말이 입 밖으로 절로 샌다. 문학은 또 작품이 어찌나 많은지! 시험에 다 출제할 것도 아니면서!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프린트를 씹어 삼키는 삶이 어쩌면 원고지의 교수와도 같지 않을까.


시험 일주일 전의 수업 시간, 한 친구가 문학을 배우던 도중에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선생님, 왜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학작품에선 부당한 삶과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저희에게 부당함을 강요하나요?”


참 모범생이었던 친구였다. 입학하고 첫 학기엔 전교 1등, 평균 60점 대 과목 만점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이름을 날렸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도발적인 질문을 하니 순간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첫 타자에 이어서 다른 아이들도 손을 들고 선생님과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만담이 지나가고 선생님께선 수업이 끝나기 전, 한 마디의 말씀을 남기고 홀연히 교무실로 사라지셨다.


 “사실, 저는 문학 작품이 어떠한 큰 사상이 담겨있거나, 교육부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사랑하는 문학이 고작 그런 것이라면 너무 슬프지 않겠어요?”


어즈버, 시험 기간이여. 사실 학급에서 일어났던 만담이 궤변의 연속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반 안에 없었다. 그만큼 철없는 아이들도 아니었고, 그런 궤변에 맞장구쳐주실 선생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질문 하나로 20분 간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젊었던 시절 사랑했던 문학이 더 이상 우리의 ‘원고지’엔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고, 부조리극을 배우고,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배우면서 우리는 100년 전 그 교실에서, 그 이야기들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 우리에게 사회가 바라는 건 무엇일까. 비판적 사고인가, 아니라면 또 한 편의 부조리극일 뿐인가.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트루먼쇼의 주인공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내 옆에 누워있는 룸메이트 미미가 사실은 월급 500만 원을 받으며 출연하는 전문 배우라던가, 하는 생각.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다. 나의 부조리한 삶이 다른 누군가에겐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비친다는 것일 테니까.


우린 너무 익숙해져가고 있다. 이 사회에, 이 체제에, 이 삶에. 아직 인생의 반도 안 살았지만 인생 앞길 누가 아나. 내가 쉰 살까지 살지, 여든 살까지 살지, 아니라면 내일모레 죽을지.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풀려고 하면 계속 꼬여가는 목걸이 줄 같다. 사슬이 꽁꽁 얽혀있어서 이쑤시개로 콕콕 찌르면 서로를 더욱 옥죄이는 그런 목걸이 줄.


그 목걸이 줄은 언제쯤 풀어볼 수 있을까. 이쑤시개를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고 미미와 나는 방의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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