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특강을 짊어진 고3이란
내 책상 앞 SNU 깃발에게
한때 어머니가 하버드 책상이라며 작은 방에 특이하게 생긴 책상을 들이신 기억이 난다. 일곱 살. 동네에 있는 불교 유치원보단 좋은 곳에 보내고 싶으시단 맘 하나로 영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셨던 우리 어머니는 벌써 딸의 대입을 코앞에 두고 생각이 참 많으신가 보다.
풍요롭지 않은 형편에 그래도 남들이 좋다 하는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피아노를 가르치고, 수영을 배우게 하고... 노력하던 어머니는 가끔 후회하시기도 한다. 공부를 시키지 말 걸 그랬나. 유달리 고생한 예년, 2주에 한 번씩 항우울제를 타서 학교에 가는 외동딸을 보며 어머니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꿈이 참 많은 어린이였다. 기억도 안 나는 6살, 누구든 허황된 소망을 가지고 살던 시기 나의 꿈은 우주대마왕이었다. 7살, 유치원 졸업사진 속 내가 Teacher이라는 팻말을 들고 서있는 사진을 보고 내 꿈이 선생님이었단 걸 오랜만에 떠올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나의 꿈은 정신과의사였다. 중학교에 들어가 400명 즈음되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보니 의사가 될 머리는 아니라는 것을 일치감치 깨달은 16살은 의사라는 꿈을 접고 인문계 기숙사 학교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더 이상 우주대마왕을 꿈 꾸지도, 의사가 되길 바라며 의대 진학반에 들지도 않는다. 그저 2호선에 나를 싣고 서울로 상경하기 위해 등수를 올리고 등급을 올리는 게 인생살이 가장 큰 목표가 되어버렸다.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말과, 유튜브에 떠도는 인강 강사들의 자극 영상 속 몇 마디로 내 하루가 흘러간다.
고3이 되니 6시 40분 즈음 등교해서 아침 자습을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젠 하버드 책상이 아니라 스카이 방석이 등장한다. 녹용, 홍삼, 종합비타민, 그리고 카페인... 고3의 피에는 부족한 철분과 부모님의 돈이 흐르는 것 같다.
기대, 불안, 불신, 부담감을 짊어지고 첫 관문을 향해 기어가는 고3들에게 대학만 잘 가면 된다는 말은 약간의 희망고문과도 다를 바가 없다.
지나가다 자습실에서 전교 1등의 책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만두 씨의 옆 자리에 앉는 전교 1등의 책상에는 이런 글귀가 하나 붙어있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도망치면 안 되는 걸까. 혈관에 부모님의 피 같은 돈이 졸졸졸 흐르는 이 부담감 속에서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도망쳐버리면 우리는 패배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걸까...
조급함이 행동에 앞서면 그건 불안감이 되고 종국엔 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내 인생의 농도는 아직 엉망진창이라 농담을 조절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