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땅에 채운 마음 – ‘채움뜰’의 시작
텃밭이 될 그 자리는 원래 폐가였다.
사람이 떠난 지 오래된 집. 무너진 지붕, 뒤엉킨 잡초, 흔적조차 희미한 정원.
누군가는 외면하고, 누군가는 철거를 이야기하던 그곳을, 나는 새롭게 보기로 했다.
'비워졌기에 채울 수 있는 곳.'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이 땅에 텃밭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거름 하나 없이 메마르고 단단한 흙이지만, 사람의 손길과 마음이 닿는다면 생명은 반드시 자란다는 믿음으로.
처음 삽을 들고 흙을 뒤집을 때, 나는 땅에게 말을 걸었다.
“다시 한번, 살아보자.”
그리고 그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름을 지었다.
‘채움뜰’.
비워진 공간에 흙과 초록을 채우고,
텃밭을 통해 마음을 채우고,
이웃과 함께 웃음을 채우고,
무너진 자리에서 관계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그런 의미를 담았다.
모집한 도시농부는 12명.
텃밭을 나누어 갖고 함께 퇴비를 만들고, 돌덩이를 걷어내고, 작은 쉼터를 손수 지었다.
우리는 농부이기 이전에 ‘회복자’였다.
죽은 땅을 살리고, 쓰러진 공간을 다시 세우는 사람들.
삶의 균형을 잃어가는 시대에, 땅과 함께 호흡하며 탄소를 줄이고 자연을 되돌리는, 작은 실천을 시작한 시민들이었다.
완두콩, 고추, 상추, 토마토, 허브.
모종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심었다.
거름 대신 정성과 기도를 뿌렸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땅이 살아났다.
초록이 피어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그것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자란 증거였다.
우리는 이제 ‘채움뜰’에서 꿈을 꾼다.
도시 속에서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시민의 텃밭.
아이들이 자연을 체험하고, 어르신이 웃음 지으며 쑥을 따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공간.
비워졌기에 가능했고,
텅 비었기에 더 많이 채울 수 있었다.
그 시작은 조그마한 씨앗 하나, 그리고 누군가의 따뜻한 의지였다.
채움뜰. 이곳에서 우리는 생명을 다시 배우고, 공동체를 다시 일군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땅에서 큰 변화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