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를 받으러 가다 (2)

by 아비드야

헌구는 사무실로 가는 동안 휴대폰으로 자신의 영상을 보며 편집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쟤 영상에 편집할 거리가 있나? 차라리 목 관리에 힘을 써서 낭독의 퀄리티를 높이는 게 낫지 않나? 아니면 괜찮은 배경 음악을 깔아 분위기를 살려 보든가. 사무실에 도착하니 순감이와 유공이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밤새 유튜브 인기 동영상을 시청하고 분석할 거라 하더니 여기저기 술병과 닭 뼈가 굴러다니고 있다. TV 화면에는 게임의 한 장면이 켜져 있고. 어제 장담한 대로 유튜브 알고리즘은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은 세웠는지 모르겠다. 헌구와 담희 누나의 영상을 반복 시청해 조회수를 올려준다고도 했는데 헌구에 따르면 조회수가 그대로란다.

“우웩, 이게 무슨 냄새야. 이 게으름뱅이들아, 빨리 안 일어나? 니들 어제 여기서 뭐 했어? 오징어랑 멍게라도 가져와 삭혀 먹었냐?”

우리 뒤를 이어 도착한 담희 누나가 코를 막으며 호된 꾸중을 날렸다. 귀가 따갑고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두 놈 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마치 누나의 화를 더 돋우려는 듯, 묘하게 거슬리는 리듬과 화음으로 더 힘차게 드르렁거린다. 순감이 녀석, 엊저녁에 산의 포스를 받으려면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더니만 자기는 요 모양 요 꼴로 늘어져 있다. 며칠 전부터 오늘 산행을 강조해 왔으니 잊은 건 아닐 테고, 둘이서 술 먹고 게임하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라는 식으로 흘러가 버렸나. 이놈을 도와 날을 잡고 산에서 애들 먹일 거라고 음식을 바리바리 싸 온 담희 누나만 헛물을 켠 셈이다. 음, 근데 이렇게까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나. 내 입장에선 계획이 틀어지려는 현 상황이 더 이득 아닌가. 오히려 이 두 녀석에게 고맙다고 넙죽 절이라도 해야 될 판이다. 멤버 중 둘이나 빌빌거리고 있으니 등산은 부득이하게 취소될 테고, 삶을 마감하려다 실패했던 그 산에 다시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찜찜해서 안 가려고 뻗대다 억지로 나왔는데, 이놈들이 이러고 있으니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지.

“누나,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아직 멀었어요?”

“아직 반도 안 왔어. 징징거리지 말고 따라와. 여기서 길 잃으면 조난된다. 그럼 오늘 내로 집에 못 가는 거야.”

결국 담희 누나의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공 네트워크 제1차 산행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내심 취소를 희망했던 순감이도 오늘이 산의 정기를 받기에 딱 좋은 날이라는 누나의 주장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적극적으로 나서 반대해 주기를 바라며 내가 살짝 바람까지 넣었지만, 대표란 놈이 별다른 저항 없이 일개 크리에이터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누나,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돼요? 대표님이 너무 힘들어하세요.”

“야, 십 분 전에 쉰 거 기억 안 나? 그러니까 술 작작 먹고 일찍 잤어야지. 정기를 받으러 왔는데 너희 둘은 기가 빨리겠다.”

지금 두 녀석은 양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기분일 거다. 밤새 음주 게임하다가 동틀 무렵에나 잠들었다고 했으니, 여기가 산인지 유격훈련장인지 구분이 안 되겠지. 말도 하지 않고 꾸역꾸역 걷기만 하는데도 근처에 가면 술 냄새가 풀풀 풍긴다. 유공이 녀석, 갈 땐 가더라도 술기운은 풀고 가자더니 해장은 잘 되고 있나 보다.

사람이 다니는 등산로로 가면 좋으련만 담희 누나는 자꾸 이상한 길로 우리를 끌고 다닌다. 유공이가 이런 길로는 못 가겠다고 불평하고 투덜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산의 좋은 기운을 받으려면 사람의 때를 타지 않은 깨끗한 흙을 밟고 정결한 나무를 지나쳐야 한단다. 원래는 꼭두새벽에 산에 가야 한다고 우겼다가 나와 헌구가 말려 지금 오게 된 거다. 한밤중인 인시에 와야 산의 정기를 듬뿍 받을 수 있다며 누나는 처음엔 새벽 두 시에 모일 것을 주문했다. 야밤에 산을 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고 다들 꺼리는데도 한때 자기가 산을 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다며 우릴 안심시켰다. 타로 카드 리딩에 도움이 될 영감과 정기를 얻고자 야간 산행을 했다는데 참 겁도 없다. 바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험한 길로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니. 나야 죽을 생각으로 산을 탔던 거라 눈에 뵈는 게 없어 그랬다지만 누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산을 돌아다닌 거 아닌가. 멧돼지도 종종 출몰해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다는데 담이 커도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길이 점점 더 험해지더니 어렴풋하게 들리던 사람 소리도 아예 사라진다. 대신 처음 들어보는 새들의 지저귐과 곤충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유공이와 순감이는 결국 좀비가 된 모양이다. 울끈불끈 핏대가 선 목을 기괴하게 꺾으며 ‘가냑, 므억’ 같은 희한한 신음을 내지르고 있다. 다리에 힘도 풀린 듯 어기적대는 걸음걸이도 심상치 않다. 아, 이 녀석들 비웃을 때가 아니다. 나도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게 거의 한계에 봉착했다. 그나마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엄마를 보내고 나서 막살았더니 몸 상태가 엉망이다.

제일 팔팔해야 할 장정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헉헉대고 헌구와 담희 누나, 구응이는 멀쩡하다. 헌구야 한창 자랄 때라 생생하다 치고, 담희 누나는 산을 많이 탔다고 하니 쉽게 지치지 않는 것 같은데. 구응이 애는 짧은 다리로 잘도 산을 돌아다닌다. 담희 누나 말로는 구응이가 이 산 태생이라서 그렇단다. 구응이는 유기견으로 추정되는 어미랑 산에서 살다가 누나에게 거두어졌다. 산행할 때 자주 마주쳐 누나가 따로 사료나 간식을 챙겨 주곤 했는데 어느 날 쓰러진 어미 옆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는 구응이를 발견했다고. 어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고 어린 강아지 혼자서 야생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 생각한 누나는 어미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 구응이를 억지로 안고 산을 내려왔다.

“이제 더는 안 되겠어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요.”

“조금만 더 가면 제대로 된 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니까. 이제 거의 다 왔어.”

“누나 아까부터 계속 그 말 하면서 끌고 다녔잖아요. 전 여기 있을게요. 저는 이만큼만 받아도 될 거 같아요.”

아무리 봐도 유공이가 거짓 엄살을 피우는 것 같지는 않다. 전동 안마기처럼 덜덜 떨리는 다리를 보니 나름 있는 힘, 없는 힘 쥐어짜 내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음주 게임의 파트너였던 순감이 역시 상태가 안 좋은 듯, 저쪽 나무에서 고개를 처박고 구역질을 하고 있다. 아마 둘 다 강제로 더 끌고 갔다간 체력이 바닥나 나중에 업고 산을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 모지리들, 사무실에 버리고 왔어야 했는데. 알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담희 누나도 드디어 포기했는지 가방을 바위 위에 던져두고 구응이에게 물을 먹였다. 그래도 이 모지리들 덕을 보기는 하는구나. 여기서 더 올라갔다간 나도 영락없이 이 둘처럼 되었을 테지. 답례로 땅바닥에 아예 등을 대고 뻗어 버린 녀석들에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하고 아픈 데는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 나도 옆에 퍼지고 앉아 숨을 골랐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