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빙글빙글 돈다

by 아비드야

어둠이 빙글빙글 돈다. 머리가 멍하다 못해 뻥하다. 손에도,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심장의 박동도 느껴지지 않고,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지도 아리송하다. 뭐야, 그새 죽어 버리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절실했을 땐 한사코 밀어내더니 포기하고 돌아서니까 덥석 물어버렸나. 이런 젠장, 죽은 게 아닌가 보다. 갑자기 목구멍에 침이 걸려 기침이 터지고 메스꺼운 기운이 올라와 헛구역질이 나온다.

그때 조금만 더 참고 버텼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견뎌서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그러면 이렇게 고통받지 않고 평온하게 저세상에 있을 텐데. 역시나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틀어지고 만다. 이 등신 같은 놈, 이런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다니. 어떻게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세상엔 태어났는지 의문이다.

이대로 마냥 누워 있다 스르르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통 없이, 두려움 없이 마치 잠에 드는 것처럼 세상을 벗어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지. 나 같은 놈에게 그런 행운이나 호사가 찾아올 리 없으니.

젖은 걸레처럼 늘어진 손을 간신히 움직여 목을 만져 본다. 아프다. 피부만 쓰리고 따가운 게 아니다. 피부 안의 근육도, 그 안의 기도나 식도라 여겨지는 부분도 죄다 아프다. 아마 먹고 마시는 데에도 꽤나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당분간은 먹고 마셔야 한다. 우울을 재충전하고 절망을 드높여 계획을 다시 실행할 때까지 억지로라도 살아야 한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 죽기 전에 정리한답시고 냉장고를 비웠으니, 갈증과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선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바닥에 들러붙은 몸을 겨우 일으켜 전등 스위치를 켰다. 눈이 부시다. 평소엔 불빛이 약해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눈이 부셔 따가울 정도다. 팔다리는 왜 이리도 후들거리는 건지, 옷이 제대로 입어지지 않는다. 신발을 신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근근이 채비를 마치고 드디어 현관문을 열었다. 늦은 밤이라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을 테고 편의점에 가는 수밖에 없다. 갈증은 수돗물로 대강 해결했으니 이제 컵라면으로 배고픔만 달래면 된다. 쫄깃한 면발을 씹고 뜨끈한 국물을 들이켤 상상을 하니 입에 침이 고인다. 죽기로 작정한 놈이 먹는 것에 이토록 환장하다니. 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잖아. 그나저나 음식을 제대로 삼킬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길거리를 걷는데 발바닥이 지면에 닫는 딱딱한 느낌이 없다. 그런데도 숨은 왜 이리도 가쁜 건지. 잠깐 멈춰 숨을 가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도 별도 없는 밤하늘은 온통 새까맣기만 할 뿐,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내 곁을 맴돌고 있는 무겁고 침울한 어둠 그대로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제멋대로 주차된 차들을 지나쳐 길모퉁이를 돌자 저만치 앞에 편의점이 보인다. 그와 동시에 나를 향해 총총거리며 다가오는 동글동글한 하얀 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윤기 나는 털이 복슬복슬한 작은 강아지다. 산책 나왔다 잃어버린 주인이라도 찾고 있는 모양인지 강아지는 수시로 머리를 숙여 냄새를 맡다가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일단 배를 채우는 게 급선무라 강아지를 지나쳐 편의점으로 가려는데, 뒤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번쩍거리는 헤드라이트를 앞세우고선 미친 소처럼 골목을 내달리는 오토바이다. 브레이크가 고장이라도 났는지, 아니면 운전자가 눈이 멀었는지, 오토바이는 멈추거나 속도를 줄일 기미 없이 질주를 계속한다. 강아지는 굉음과 헤드라이트 빛에 넋이 나가 덜덜 떨면서 그 자리에 얼어 있다. 분명 저 오토바이는 강아지를 친다. 좋지 않은 일엔 여지없이 들어맞는 내 육감이 연약한 생명체가 내지르는 가냘픈 비명을 반복해서 들려준다.

냅다 강아지를 향해 달려가 몸을 던졌다. 생명을 구하겠다는 고귀한 희생정신이 솟구쳤다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상상 속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멋지게 날아올라 강아지를 구하는 장면을 그렸지만, 제삼자의 눈에는 웬 좀비가 어기적거리다가 땅바닥에 꼬꾸라지는 모습처럼 보였을 거다. 어쨌든 나는 오토바이가 치기 전에 강아지를 품 안에 안을 수 있었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여린 생명체를 껴안고 몸을 웅크렸다. 따뜻하다. 강아지의 따스한 온기가 내 심장을 감싼다. 콘크리트 바닥의 차가움과 오토바이 바퀴가 땅을 할퀴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이 작은 동물의 온기가 모두 상쇄시켜 준다.

오토바이는 가까스로 우리 앞에서 멈췄다. 오토바이의 살벌한 기계음이 멎자마자 운전자의 날카로운 욕지거리가 쏟아졌다. 강아지가 내 품에서 튀어나와 운전자를 향해 짖어댄다. 운전자의 상스러운 쇳소리와 강아지의 낭랑한 짖음이 한 데 섞여 골목에 울려 퍼진다. 나는 몸을 돌려 바닥에 등을 대고 하늘을 본다. 어둠이 빙글빙글 돈다.


goo_2 (revised).png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