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술사와 증장천 (1)

by 아비드야

“이봐요. 정신이 들어요?”

밝은 불빛이 나를 비추고 있다.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바로 위에서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간호사 언니, 이 사람 깨어났어요. 근데 상태가 이상해요. 와서 봐주세요.”

누구지? 기억에 없는 얼굴이다. 여자는 돌렸던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본다.

“저기요, 괜찮아요?”

눈 바로 위에서 부산스럽게 흔들리는 손이 무척이나 거슬린다. 정신 사나우니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입안이 바짝 말라 혀와 입천장이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다. 우선 물을 마셔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해 ‘물!’이라고 외쳤다. 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내 것 같지 않은 팔을 얼굴 쪽으로 당겨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해 보았다. 여자는 알아듣지 못한 듯, “왜 이러지? 정신이 아직 안 돌아왔나?”라고 혼잣말을 하며 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 간호사를 불러오기 위해 자리를 떴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환자분 찰과상 몇 군데 입은 거 말고는 다른 특별한 외상은 없어요. 영양실조 증상이 있어 기력이 없는 거 같은데, 수액 하나 놔 드릴게요. 그거 맞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간호사의 시선이 애매하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시선이 얼굴이 아니라 아래에 있다. 목 부근을 보고 있는 듯한데, 수액을 체크하면서도 수시로 같은 부위를 눈으로 훑는다. 자리를 뜰 때는 그쪽을 보며 얼굴을 찡그리기까지 했다.

“이거 참, 오늘 운세가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야. 아, 맞다. 자정이 지났으니까 새로 카드를 뽑아야 하나? 아닌데. 아까 분명히 열두 시 지난 뒤에 카드 뽑았던 거 같은데…….”

여자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가방을 뒤졌다. 목이 너무 마르다. 온 신경을 오른손에 집중해 여자의 주의를 끌어보려 애썼다.

“어, 왜요? 여기 어딘지 알겠어요? 병원 응급실이에요. 그쪽이 강아지 구하려고 오토바이 앞에 뛰어들었잖아요. 기억나죠?”

이 여자가 내 의도를 모르고 자꾸 딴소리를 한다. 다시 힘을 내 검지로 목을 가리켰다.

“목이 왜? 목이 아파요? 음,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젓고서 이번엔 물을 외쳤다. ‘물’이라는 소리 대신, 풍선에서 공기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 물. 난 또 뭐라고.”

다행히 여자가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여자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다가 자신이 안고 있는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냈다. 내가 손에 힘이 없어 물병을 제대로 쥐지 못하자 병뚜껑에 물을 받아 입안으로 물을 흘려주었다. 벌컥벌컥 마셨으면 좋으련만 병아리 오줌만큼 찔끔찔끔 받아먹으니 감질이 났다.


“저기요, 여기서 카드 한 장만 뽑아 볼래요?”

여자가 물을 먹이다 말고 부채꼴로 펼친 카드 더미를 내밀었다. 내가 물과 목을 손으로 번갈아 가리켜도 요지부동이다.

“부담 가질 거 없어요. 스스로의 마음에 집중하면서 하나 뽑아 봐요.”

아니,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나는 물을 더 마셔야 한다고! 영문 모를 엉뚱한 짓은 관두고 물이나 더 줬으면 좋겠구만. 그렇지만 내 욕구를 고집하기엔 여자의 눈이 너무 초롱초롱하다. 하는 수 없이 여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스스로의 마음에 집중하기는 개뿔, 아무거나 대충 뽑았다.

“뭐야, ‘검 5번’이잖아. 흠, 이건 아닌데. 일단 이건 넣고……. 다시 뽑아 볼래요?”

여자는 뽑은 카드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고 재빨리 더미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카드를 다시 섞었다. 간신히 손에 잡히는 카드의 크기 때문인지, 미숙한 손놀림 탓인지, 카드를 섞는 폼이 영 어색하다. 가지런히 섞이지 않고 카드가 비죽배죽 튀어나오는가 하면, 더미에서 카드가 튕겨 나와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여자는 대략 일 분가량 진지한 표정으로 셔플을 하더니 다시 뽑아보라고 카드를 펼쳤다. 또 아무거나 대충 뽑았다.

“그래, 이거지. 이거 봐요.”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뽑은 카드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눈, 코, 입이 달린 태양 아래 벌거벗은 아이가 하얀 말을 타고 있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아이는 자기 몸을 몇 번이나 감고도 남을 붉은 색 기를 들고 있다. 아이와 백마 뒤에 있는 담장에는 해바라기가 피어 있고, 카드 아래쪽엔 ‘The Sun’이라고 적혀 있다.

“이게 뭐냐면요. 태양이 환하게 비치고 있죠? 둥근 형태가 다 드러나 하늘을 덮고 있잖아요. 이건 성취와 완성을 의미해요. 이제 곧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고 목표를 달성할 거라는 거죠. 아래의 어린아이는 시작을 뜻해요. 발가벗은 어린아이. 순수하면서도 무한한 잠재력이 느껴지지 않나요? 게다가 이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어요. 고통과 괴로움을 모른 채 아주 행복하다는 거죠. 백마는 아이처럼 순수함을 의미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추진력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휘장, 백마의 순수와 대비되는 정열의 빨간 색이죠. 말 그대로 뜨거운 열정을 뜻해요. 이쯤 되면 담장 위의 해바라기는 무얼까 궁금해지죠? 해바라기는…….”

그나저나 이 여자 물에 약이라도 탔나? 이상하게도 졸린다. 어쩌면 별 시답잖은 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놔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그렇다 치고,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다. 이번에 눈을 감으면 다시는 뜨고 싶지 않다. 저기 멀리 엄마가 보인다. 어둠 속에서 홀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내가 뒤에 있는 걸 모르는 듯 계속 앞을 보고 걷기만 한다.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으면 좋겠는데,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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