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친구야~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잔뜩 흐렸다. 마음도 그 흐림을 따라가는 듯 이유 없는 무게가 하루 종일 어깨에 내려앉아 있었다. 창밖을 가만히 보다가 어김없이 침묵을 택하려던 찰나에 전화가 울렸다.
반가운 이름.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잘 지내?"
익숙하고, 따뜻하고, 약간은 들뜬 목소리.
동갑내기 여사친.
오래 알고 지낸 친구지만 언제나 새삼스럽게 고맙다. 현대음악작곡가인 그녀는 늘 창조적인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내 감정의 결을 너무나도 잘 읽고 공감해 준다.
마치 나와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처럼...
우리는 둘 다 도시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골로 내려왔다. 복잡한 세상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과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하루하루 다르지 않은 일상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이어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 또한 내 삶이 조금은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오늘도 그녀는 별다를 것 없는 근황을 전했다. 도자공예를 배워 플리마켓에서 팔았다느니... 나도 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요즘 자주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서
막막한 미래에 대해서 그리고 나이 들어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마음의 방향에 대해서...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걱정들, 막상 현실이 되진 않더라. 우린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잖아. 별 일 아닌 것들도 그땐 다 커 보였지만 결국 잘 지나왔고."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너의 일도 나는 그냥 당연히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네가 너무 잘하는 일들이잖아~"
그 말이 어찌나 단단하고 자연스러운지 그녀의 확신 속에 담긴 나를 향한 믿음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나는 스스로도 가끔 의심하는 나를... 그녀는 이렇게 단단히 믿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고마운 건 그 믿음이 어떤 조건도 없이 그저 나라는 사람 자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짧은 통화였지만,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흐릿한 먹구름이 조금 걷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별다른 위로나 충고 없이 묵묵하게 옆을 지켜준다. 동성 친구들보다 더 편안한, 같은 결을 가진 사람. 키도, 덩치도 나만해서 괜히 웃음이 나는 사람...(나도 보통 덩치가 아닌데...ㅋㅋ)
살다 보면 많은 이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함께 머무는 친구는 흔치 않다. 무언가를 함께 하지 않아도, 그냥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건 참 다행이고 참 감사한 일이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흐리던 마음에 작은 햇살이 스며든다.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지만 내 안의 날씨는 조금 개어 있었다. 오늘을 살아낼 용기를 다시 조금 얻은 것 같았다.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