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소설) 제가 안 보이세요? (2/5)

⁋이게 소설이라고?... 11

by 둘리아빠



※ 제주어로 쓴 소설입니다. 아래아(ㆍ)를 제대로 표기할 수 없어 그림 화일로 만들었습니다. 제주어가 낯설은 분들을 위해 표준어로 풀어 쓴 부분도 같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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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 쓰면 ……



그러나저러나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튿날 퇴원을 하고 오빠랑 막냇동생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도심지 근처에 얼마 전에 새로 지은 시설이라 깨끗하고 널찍한 곳이라 그러더군요. 그렇게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 신경 쓸 필요 없이 혼자 제 몸 움직이며 사는 세상으로 말입니다.


그 무렵 오십 줄에 막 접어들었던 저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지내고 있었어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그럭저럭 살만하더군요. 아, 제가 남편과 헤어진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어머니는 성격이 맞지 않아서 갈라섰다고 알고 계시죠? 그래서 처음부터 찰떡궁합으로 시작하는 부부가 몇이나 되겠냐며 저를 타박하셨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요, 애를 못 낳는다고 쫓겨났거든요. 조선시대도 아니고 남우세스러워 말도 못 한 채 혼자만 끙끙거렸지요. 처음에는 한약도 달여 주고 몸에 좋은 영양제도 챙겨주곤 했어요. 그러다가 병원에서 불임의 원인이 여자에게 있다고 하니까, 그 후로는 시어머니가 대놓고 구박하더라구요. 남편까지 자기 일이 아니라며 나 몰라라 하고. 도리가 없었어요. 남편에게 이혼하자 하고 옷가지 몇 개 싸들고 나와버렸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제가 서른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위자료는 고사하고 돈 한 푼 못 받고 나왔으니 먹고 살려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하찮은 멸치도 자존심이 있는데,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은 제 성격에도 안 맞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조금 젊었을 때는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도 해보고, 급식 보조나 물리치료 보조도 해봤어요. 마흔이 넘어서는 초콜릿 공장에서도 일해 보았고 하루 종일 먼지 풀썩이는 장갑 공장 노동자도 해보았습니다. 어머니가 고관절 수술 받을 즈음에는 대형 할인마트에서 계약직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린 다음 날 오전에 요양원에서 오빠에게 전화가 왔대요. 어머니가 잠도 안 주무시고 물건들을 집어 던지며 행패를 부린다고요. 오빠가 다급하게 요양원에 갔더니, 어머니께서 제발 집에 보내달라고 사정하더랍니다. 요양원에서는 다른 입소자들을 해코지할 우려가 있으니 당장 모시고 가라고 재촉하고요.


다시 형제들이 모여서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보내도 되느냐를 놓고 의논을 한 거예요. 그전에는 가족회의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 모시는 문제로 여러 번 회의를 했어요. 저는, 재산 나눠줄 때도 이렇게 회의를 했어야지, 하며 혼자 속으로만 궁시렁거렸습니다.


막내 올케가 그러더군요. 콧대가 세어 손위 시누이 대접은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않는 올케죠. 요양병원이라는 데가 그냥 수면제 먹여서 재우기만 하지 치료하는 것은 별로 없으며, 똥을 많이 싼다고 밥을 조금씩만 주고, 말을 안 들으면 침대에 손발을 묶어 움직이지도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저도 그러는 데고 있다는 걸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습니다. 남자 형제들은 하나같이 오래 침묵하기 게임을 하는 아이들처럼 아무런 말도 없었어요. 가끔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지금 고민을 하고 있다는 기척들을 하곤 했고요. 저는 아들들이 어떤 묘수들을 짜낼지 내심 궁금하기도 해서 아무 말 않고 얌전히 앉아만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도 없어 보였으니까요. 그런다고 남들이 뭐라 흉보지도 않을 테고 말입니다.


“이러다 해 넘어가겠어요. 어머님을 치매 병원에 모시는 것은 저도 반댑니다. 그렇다고 우리 집으로 모실 수도 없고요. 어머님이 사시던 집도 비어 있고 하니 고모가 그 집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살면 어떻겠어요? 치료비와 생활비는 남자 형제들이 똑같이 나눠서 부담하기로 하고요. 고모가 좀 고생되기는 하겠지만, 고모도 아시다시피 직장도 다녀야 하고 애들도 있고 해서 다른 자식들이 모실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잖아요.”


초등학교 선생이라 그런지 혼자 똑똑한 체하는 육지 큰올케의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들으니 제 가슴이 갑자기 철렁 내려앉고 정신마저 어지럽더군요. 엥,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 싶어 형제들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오빠나 다른 아들 둘은 별다른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막 기뻐하는 것 같았어요. 얼굴 표정도 밝아지고 눈빛도 달라졌거든요. 그들끼리 미리 의논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더군요. 깍쟁이처럼 제 것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 큰올케가 혼자 생각해 낸 것 같았어요. 그 후로는 성제들이 저를 설득하기 위해 별의별 소리를 다 하더군요. 이렇게도 해 주고 저렇게도 해 주겠다고 하면서요. 왜 텔레비전을 보면 병들어 무리에서 버려진 수사자를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들 있잖아요, 꼭 그런 형국이었다니까요.


막내는 요양 등급을 받으면 요양보호사를 불러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하고, 둘째는 생활비를 부족하지 않게 모아 주겠다고 하고, 둘째 올케는 당번을 정해서 일요일마다 반찬거리를 마련해 들르겠다 하고, 오빠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다세대 주택에 제가 계속 살아도 좋다는 말까지 했어요. 그 이야기는 큰올케와 미리 의논한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 말을 들은 큰올케가 오빠에게 눈을 흘기더군요. 나중에 두 내외가 다투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그들로서는 그만큼 다급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큰올케가 그런 입 바른 소리를 할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하지만 오빠가 당장 내일이라도 어머니를 요양원에서 모셔 와야 한다고 다그치더군요. 수고비를 포함해서 한 달에 3백만 원을 주겠다고 구체적인 액수까지 들이댔어요. 그즈음의 제 형편으로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입주 간병인도 그 정도는 받는다고 합디다만. 그렇게 해서 제가 어머니를 보살피겠다고 했더니 형제들이 기분이 좋은 듯 웃더군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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