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소설) 제가 안 보이세요? (3/5)

⁋이게 소설이라고?... 12

by 둘리아빠



※ 제주어로 쓴 소설입니다. 아래아(ㆍ)를 제대로 표기할 수 없어 그림 화일로 만들었습니다. 제주어가 낯설은 분들을 위해 표준어로 풀어 쓴 부분도 같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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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 쓰면 ……


제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됩디다. 형제들이 내세우던 ‘가족의 도리’를 고분고분 받아들여 그랬을까요. 형편이 되는 사람이 곤란에 처한 가족을 도와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는. 어쩌면 할인마트 일이 좀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계산대 앞에 서서 일하느라 무릎이랑 종아리에 심한 통증이 오기도 했거든요. 자기들만 잘났다고 젠체하는 손님들 대하는 것도 영 비위가 상하는 일이었고요. 아무리 그래도 돌이켜보면 제가 약간 정신이 나간 것 같기도 해요. 술독에 빠져 술주정 하는 남자가 무서워 도망쳤는데 매질하는 남편을 마나 매꾸러기가 된 꼴이었으니.


그날 이후로 꼬박 다섯 해. 남자 형제들이 그때 약속한 것들은 여름철 냉동실에서 꺼낸 생선처럼 유효기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일주일마다 밑반찬을 만들어 가져다 준다는 말도, 틈을 내어 자주 찾아뵙겠다는 말도. 그렇다고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문서를 작성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생활비요? 아, 그거는 웬일인지 꼬박꼬박 보내주더군요. 그런데 어머니 통장을 정리하다 보니 노령연금이랑 기초연금이 이래저래 한 달에 오십만 원쯤 입금되고 있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두 번째 달부터는 생활비를 이백오십만 원만 주겠다고 하더군요. 조금 치사했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어머니가 사시던 다세대 주택 얘기는 나중에 해드릴게요.


다음날, 그동안 혼자 살았던 일곱 평짜리 원룸을 정리하고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할인마트에는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겠다고 전화로 알려줬어요.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급한 대로 성인용 기저귀를 몇 박스 챙겼고, 당장 먹을거리도 조금 준비했습니다. 저녁에 오빠가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오더군요. 목욕부터 시키고 옷을 갈아입혀 드렸어요. 살던 집이라 안정이 되었는지 어머니는 욕조 속에도 순순히 들어가고 별 까탈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저에게 맡기고 돌아가는 오빠의 표정이 힘든 일 하나 끝낸 사람처럼 홀가분해 보였어요. 혼자 사는 누이에게 미안해하거나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은 없었던 것 같아요.


사나흘은 얌전하게 지냈어요. 밥도 잘 드시고 잠도 잘 주무셨어요.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움직임도 별로 없이 텔레비전을 보는 게 일이었어요. 시간 맞춰 대소변 처리를 도와주는 것 말고는 힘들 게 없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돌아서 무얼 하면 좋을까 고민해야 할 정도로. 책을 읽거나 취미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렇게 육신을 놀리지 않고 편하게 살아도 되나 하는 미안함 같은 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런 생활이 며칠 가지 않습디다.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받아 온 약이 떨어지자 어머니는 돌변했어요. 잠이 없는 밤 고양이처럼 밤새 거실을 배회하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잘 들리지 않는다고 텔레비전 볼륨을 크게 높여 이웃들로부터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기도 했어요. 거실이나 부엌에 있던 전화기나 전기밭솥, 냄비, 프라이팬 같은 것들을 어머니가 주무시는 방으로 옮겨서 쌓아놓았고, 제가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으면 괴성을 지르며 저에게 달려들기도 했어요. 밤중에 제 방에 들어와 옆에 붙어 앉아서 제 몸 여기저기를 만지면서 잠을 못 자게도 했고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며 밖으로 나가려고도 했습니다. 며칠째 집에 안 들어오는데 걱정도 되지 않느냐고 오히려 저에게 야단을 치면서. 어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 해도 말을 들어야 말이죠.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현관문을 열고 사라지기도 했어요. 온 동네를 돌아다녀도 찾지 못해 경찰에 신고를 한 것도 여러 번은 될 거예요.


어머니가 약만 제때 먹으면 그런대로 견딜 만했어요. 아침 열 시쯤에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여 간단한 집안일을 해주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요양보호사가 어머니 몸도 씻기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해야 하지만, 결벽증이다 싶을 만큼 깐깐한 어머니는 요양보호사가 제 몸에 손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어요. 할 수 없이 요양보호사가 집안일을 맡으라 하고 제가 어머니를 돌보는 것으로 했습니다.


일 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마당에서 미끄러져 뒤로 넘어지면서 골반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병원에서는 시간이 지나 뼈가 붙기만을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남자 형제들은 어머니를 어떻게 모셨길래 그 지경이 되었느냐고 저를 몰아세우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버럭 화가 치밀었어요. ‘그렇게 못마땅하면 직접 한 번 해보라. 당신네 어머니 아니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군요. 그 후로 어머니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방에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걸어 다니질 못해서 그랬는지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하루하루 더 심해지더군요.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고, 살림 도구들을 집어 던지고, 저에게 자식들 버려두고 서방 얻어서 달아난 년이라 욕하면서 머리채를 휘어잡으려 하고, 검침원이나 택배가 왔다 가면 남편 몰래 외간 남자를 집으로 들이려 하느냐며 몰아세우고, 막내아들 결혼식에 입을 한복을 찾는다고 밤새 장롱 속을 헤집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늙으면 괄약근이 헐거워지면서 똥오줌 가리는 게 힘들어진다던데, 치매까지 합세하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다시 배설을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당신도 불편해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싶어 방치해 두면 똥을 방바닥에 문지르거나 똥 묻은 기저귀를 당신대로 풀어내 마른 빨래 개키듯 곱게 접어 머리맡에 놓기도 했어요. 그 사이에 또 이불이 흥건하게 오줌을 내지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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