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소설이라고?... 13
※ 제주어로 쓴 소설입니다. 아래아(ㆍ)를 제대로 표기할 수 없어 그림 화일로 만들었습니다. 제주어가 낯설은 분들을 위해 표준어로 풀어 쓴 부분도 같이 게재합니다.
♧ 풀어 쓰면 ……
밤에 얌전하게 잠 좀 주무시라고 수면유도제를 먹여도 별로 소용이 없습디다. 너무 오래 복용하다 보니 수면제에 면역이 된 모양이더군요. 날이 어스름해지면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며 엉덩이로 바닥을 밀면서 육신을 현관까지 끌고 가기 일쑤였구요, 오밤중에 현관문을 탕탕 두드리며 ‘살려 달라’ 외치는 바람에 무슨 일이 있느냐며 경찰이 출동한 적도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밤중에 뜬금없이 큰소리로 ‘불이야’ 외치는 바람에 윗집 주민들이 놀라 대피하는 소동을 벌인 적도 있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어머니가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을 지경이었다니까요. 밖으로만 나가려고 하는데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잖아요. 어머니의 욕설 때문에 황당해하던 요양보호사도 여러 명이 그만두기도 했고요.
남자 형제들이 어쩌다가 가끔 집에 들르기는 했어요. 자기들끼리 당번을 정했는지 주로 주말이나 휴일에 돌아가면서 왔습니다. 보름에 한 번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화만 오고 한 달을 넘기기도 했어요. 형제들이 오면 어머니에게 말을 걸거나 손 한 번 잡으려 하지 않더군요. 화가 난 사람처럼 잔뜩 찌푸린 얼굴로 멀뚱히 앉아서 텔레비전에만 눈을 두고 있다가 한 시간도 채 머물지 않고 얼른 돌아갔습니다. 아들들 얼굴 한 번 보려고 손꼽아 기다렸을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처음부터 어머니를 제가 맡으라고 했던 큰올케는 자주 들린다고 했지만, 말만 앞설 뿐 얼굴 한 번 내민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제가 허리 디스크 때문에 병원에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다 보면 허리에 여간 무리가 가는 게 아니거든요. 제가 없을 때 남자 형제들이 하루씩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가까이 돌봤는데, 오빠가 하도 전화질을 하는 바람에 마음 편히 병원에 누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만 찾는다는 핑계를 둘러댔지만, 세상의 어느 어머니가 아무려면 아들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지 딸을 찾았을라구요?
하루 세 끼 식사를 챙겨주는 거야 어찌어찌 했지만 기저귀 가는 게 힘들었다고 하대요. 제가 기저귀를 갈 때도 어머니는 허벅지를 오므리며 발버둥치고, 두 손으로 밀치고 하면서 난리를 쳤어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남이 아랫도리를 만지는 게 민망한 모양입디다. 그렇다고 저라고 어머니 똥오줌이 징그럽고 추접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다 제 성질을 못 이겨 손놀림이 거칠어지기도 하고, 똥이 묻은 손으로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잘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빗줄기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합니다.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방금 두 번째 소주병을 땄습니다. 술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 곁에서 간병하다 보니 술이 많이 늘었어요. 혼자 막막하고 답답할 때 소주만 한 게 없더라구요. 어머니를 간병하는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아이고, 나 힘들어 죽겠습니다.’ 라고 하소연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따지고 보면 저를 낳아준 어머니를 제가 보살피는데 남들에게 공치사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잖아요. 그래도 힘든 걸 어떡해요. 술로라도 달랠 수밖에.
아들들도 제게 어머니를 맡기면서 가족의 도리나 의무감 같은 것을 내세우더군요. 우리는 한 가족이 아니냐는 게예요. 맞는 말이죠. 한 아버지 한 어머니 아래서 자랐으 가족이 맞잖아요. 재산이야 저는 딸이라는 이유로 배제하고 남자 형제들끼리 나눠 갖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막상 제가 혼자 어머니를 간병하다 보니 그들의 들이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저의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었을 무렵, 오빠네 큰애가 결혼을 했어요. 제게는 조카뻘이잖아요. 걔네들이 결혼 비용을 아껴서 집 사는 데 보태기로 하고 양가 친척들끼리 모여 상견례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했대요. 호텔방 하나를 빌려 식사하면서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반지도 교환하고 했다더군요. 그런데 저는 두어 달이 지나서야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카가 신혼여행 다녀오고 나서 인사를 오겠다고 제게 전화 왔을 때였죠. 뭐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오더군요. 생각 없이 한가하게 길을 걷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냅다 따귀를 여러 번 맞은 느낌이랄까. 그날 조카가 집에는 들어오지 않으려고 해서 부근 카페에서 조카며느리를 처음 봤어요. 큰올케가 할머니 많이 편찮으시니 집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대요. 그러니까 불쌍한 우리 어머니는 장손며느리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거예요.
그 후로도 이런저런 사유로 형제들이 모여서 식사를 했답니다. 회사에서 승진했거나 조카들이 취직했을 때, 학교 입학이나 졸업 같은 그런 날들 있잖아요. 그런 걸 왜 했는지 따지는 게 아닙니다. 남들도 그렇게들 사니까요. 그런데 왜 저에게는 연락을 안 했을까요? 여동생의, 누나의, 시누이의, 고모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저도 당연히 그들과 한 가족이라 생각했었는데요.
치매 환자를 간병하다 보면 항상 병을 달고 사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명치끝이 답답하고 무얼 먹기만 하면 위로 올라오면서 목이 쓰려서 병원에 갔더니 위장이 안 좋다고 하더군요.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그런다고 합니다. 오후 늦게만 되면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고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려 우울증 약도 먹고 있습니다. 과민성 대장 증상이란 것도 노상 달고 살고 있고요. 하루에 대여섯은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합니다. 제 눈이 퀭한 게 보이시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그뿐인 줄 아세요? 어머니 욕창을 막으려고 시간마다 몸을 들어 돌려 눕히느라 어깨뼈랑 허리뼈도 결딴이 났어요. 비라도 올라치면 여기저기 뼈가 쑤셔 꼼짝달싹 못 할 지경입니다. 한번은 화장실에서 목욕시키다가 어머니가 하도 버둥대는 바람에 바닥에 미끄러져 119로 함께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었어요. 어머니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처음 얼마 동안은 제 나름의 희망으로 하루를 버텼어요. 어머니가 연세도 있으니 머지않아 숨을 거두시겠지, 하는 기대감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사람을 더 못 견디게 하더라고요. 오늘 죽을 건가 내일 죽을 건가 하면서 기다린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어젯밤에 죽지나 않았는지 아침마다 어머니 방문을 빼꼼히 열어보곤 하는 게 사람 할 짓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는 거꾸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고생하면 되는구나, 내가 죽으면 이 힘든 일을 더 안 해도 되는구나, 하면서 견뎠던 거죠. 그랬더니 마음이 약간 편안해지더군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버티긴 했지만 눈꺼풀 들어 올릴 힘조차 없이 맥을 못 출 때도 많았어요. 가끔은 잠자는 어머니 귓속에 대고 ‘어머니, 하나 있는 딸내미 그만 속 썩이고 이제는 돌아가시면 안 되겠어요?’ 라고 속삭이며 울먹이곤 했어요. 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어머니가 이대로 돌아가시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고생해서 저를 낳아주고 키워준 어머니잖아요. 생각하면 할수록 남자 형제들에게 화가 나서 죽겠어요. 병구완이 길어질 거 같으면 형제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슨 수를 내도 내야 될 거 아니에요? 자기들 편하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어이구, 이젠 그만할래요. 그때는 정말 갓 태어난 다섯 쌍둥이를 혼자 돌보는 것보다 더 힘들었는데, 이제 와서 그걸 주절주절 이야기하려니 너무 구차스럽네요. 제가 울며불며한다고 아들 형제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도 않을 테고, 다 지나간 일을 두고 뭐라고 하면 저만 입 아프잖아요.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어머니는 돌아가셨죠. 그때 어머니 나이가 여든여섯 살이었을 겁니다. 삶에 그렇게 미련이 남았었으니 죽음으로 들어가는 문손잡이를 붙잡고 안 들어가겠다고 요란법석을 떨어댈 줄 알았는데 웬걸, 아버지처럼 조용히 숨을 거두시더군요. 전날 밤늦게까지 끙끙거리며 잠을 자지 않길래 어머니가 좋아하는 다디단 사과 주스에 수면제 몇 알을 갈아 넣어서 먹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여덟 시가 넘도록 기척이 없어, 이상하다 싶어 어머니 방에 가보니 숨이 끊어져 있었던 거예요. 이부자리도 흐트러짐이 없는 걸 보니 주무시다가 돌아가신 것 같았죠. 저는 이게 무슨 조홧속인가 싶어 한참 동안 어머니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습니다. 혹시, 수면제를 과다하게 드린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 건 아닌 듯했어요. 평소에도 그 정도는 복용해 왔었거든요. 오빠에게 전화했더니 별로 놀라지도 않고 깊은 한숨만 쉬더군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