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소설) 제가 안 보이세요? (5/5)

⁋이게 소설이라고?... 14

by 둘리아빠



※ 제주어로 쓴 소설입니다. 아래아(ㆍ)를 제대로 표기할 수 없어 그림 화일로 만들었습니다. 제주어가 낯설은 분들을 위해 표준어로 풀어 쓴 부분도 같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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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 쓰면 ……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형제들의 눈치가 약간 이상했어요. 간병에 지쳐 제가 어머니를 일부러 죽도록 놔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것 같았거든요.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방귀 뀐 놈이 되레 성을 내는 것처럼 제가 지레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그즈음에 ‘간병 살인’이라고, 간병을 하다 지쳐서 환자를 죽여 버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어머니 시신을 검사하러 온 의사가 ‘병사’로 사망 진단서를 발급해 줘 더 이상의 논란은 없었지만, 한동안 너무 속상하고 분해서 죽을 것만 같았어요. 영락없이 자기만 살겠다고 딸을 팔아먹은 심봉사가 된 심정이었으니깐요.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형제들이 모두 오빠네 집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빠가 봉투를 하나 내밀더군요.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았다고 했습니다. 한약이라도 몇 첩 달여 먹으라고 합디다. 수고비라 생각하고 챙겨 넣었습니다. 형제들이 제게 너무 고생했다는 말들을 했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라 그런지 별로 고마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며느리들은 빈말이라도, 시어머니 보살피느라 몸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고요. 아마도 딸도 똑같은 자식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죠. 저는 속으로만 ‘그래그래, 당신들 정말 잘 났네요’ 했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봉투를 확인했더니 오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들어있더군요.


그후로는 저도 어쨌든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했어요. 그동안 형제들이 보내 준 생활비를 아껴서 모은 돈도 약간 있었지만, 언제 큰 병에라도 걸려 목돈이 필요할지도 알 수 없었으니까요. 서너 달 일 없이 놀다가 용돈벌이나 할 만한 자리를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젊은이들도 취업하기 힘든데 쉰 넘긴 아줌마를 쓰겠다는 곳은 없었습니다.


어머니 간병 경험을 살려서 병원 간병인을 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특별한 자격도 필요 없고 몇 시간 교육만 받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남의 불행에 기대어 밥벌이를 한다는 게 썩 마음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병실에만 박혀 지내는 것도 못 견딜 것 같고, 환자들과 있다 보면 매일 어머니를 떠올릴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운이 좋아서 다세대 주택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 대학교 청소하는 일을 소개시켜 주더군요. 그게 일 년이 좀 지났네요.


어머니 돌아가신 후 연락도 없고 얼굴 한 번 비친 적 없던 오빠가 저를 찾아온 게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이었을 거예요. 큰올케가 이 집을 리모델링해서 세를 놓고 싶다고 한다네요. ‘그래서, 나보고 나가 달라는 거예요?’ 라고 대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런 게 어디 있느냐, 어머니를 맡기로 할 때 내가 살고 싶을 때까지 살아도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지도 안 했어요. 치매를 앓는 사람 곁에서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뭐가 옳고 그른지를 따질 의욕이 아예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요. 머릿속이 캄캄해서 아무런 생각도 만들 수 없었거든요. 저는, ‘알겠다. 이사 준비가 되면 연락하겠다’ 라는 말만 했어요. 오빠는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참을 쭈뼛거리다 돌아갔어요. 한 달 후에 제가 청소하는 대학교 근처 원룸으로 짐을 옮겼죠. 형제들이 모아서 주었던 오백만 원도 필요 없다며 오빠 계좌로 돌려주었고요.


글쎄요, 한편으로 돌아서 생각해 보면 아들 형제들도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들 입장에서는 어쩌다 재수가 없어서 그런 상황을 맞이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을 거예요. ‘치매가 어떤 병이야?’ 하면서 젊은 사람들처럼 맑은 정신으로 오래 살다가 죽는 어머니 아버지들도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형제들이 저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은 갖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첫딸은 집안의 궂은일 도맡을 팔자라 하지만, 딸도 밥 먹고 밤에 잠도 자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저였으니 어떻게든 견뎌냈지 아들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요? 그러나저러나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죽자 살자 간병하는 딸은 모른 체하고 자기들끼리만 어떻게 재미있게 살 수 있었을까요? 이러나 저라나 우린 한 가족이잖아요? 왜 제 말이 틀렸나요?


그렇다고 제가 지네 창자처럼 속 좁은 사람은 아니예요. 어머니를 누가 간병할 것인지를 놓고 형제들끼리 다투면 남우세스러운 일 같아서, 제가 맡겠습니다고 하기는 했어요. 그래도 아들들이 같이 나서서 자기몫을 알아서 해주었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남편 없고 가진 거 없으니 만만해 보인다고 저만 무시한 거 같아서 애석하고 원통합디다. 그렇게 했는데도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는 형제들을 보면 복장 터지지 않겠어요? 힘이 드니까 좀 도와달라 하면 선뜻 달려들어서, 그러면 나에게 의지해라, 하는 게 가족이 아니냐고요? 그나저나 어머니 간병 하느라 고생고생한 제 인생은 누가 배상해 줄 거예요?


이참에 남자 형제들이랑 ‘가족’이라는 인연의 끈을 놓아버리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그럴려고 제가 이사 간 곳을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았어요. 하긴 이사 하겠다고 연락했을 때 오빠는 어디로 갈 건지 궁금해하지도 않았습니다만. 우리 오빠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요. 나중에 제가 죽더라도 모르게 휴대전화에 있는 형제들 연락처도 다 지워버릴 생각이에요. 혼자 죽으려면 외로울 거라고요? 왜 가족이나 형제라고 해서 같이 죽어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 세상에 외롭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어요? 어머니는 장례를 치를 때 자식들 옆에 있으니 덜 쓸쓸하던가요?


어머니, 죽어라고 어머니 간병할 때부터 혹시 제가 유령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어요. 형제들 눈에는 어머니 곁에서 혼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제가 안 보였던 모양이에요. 그러지 않았다면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굴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자기들은 한 달도 버티지 못할 일을 저는 오 년이나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어머니 보내드리고 나니 나 몰라라 하는 거예요. 이제는 알아서 먹고 살라고, 어른이라면 자신의 삶을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겠죠. 맞는 말입니다만, 그렇다면 자기네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는 왜 저에게만 알아서 하라고 했을까요?


우스운 게 뭔지 아세요? 먹고 살아보려고 대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다 보니까 또 거기도 거기만큼 한 곳이더라고요. 매일 깨끗이 청소한 강의실이나 화장실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새벽부터 출근해서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쓸고 닦고 치우느라 고생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창가에 먼지가 가득 쌓이고 바닥에 물기가 흥건히 고이거나 여기저기 쓰레기가 굴러다니면 그제야 여기 청소하는 사람들 어디 갔나, 하면서 찾는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저 같은 청소원들은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들인 거죠.


그렇다고 어머니를 탓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머니가 일부러 나 치매 걸ㄹ려야 되겠네, 한 것도 아니잖아요.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어머니랑 아옹다옹 같이 살아온 날들을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힘든 고통도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거리가 되더라는 흰소리는 아니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옆에서 같이 지낼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았다는 거예요. 코로나라는 놈들 때문에 요양원에서 자식들 임종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돌아가시는 노인분들이 많았을 무렵이었잖아요. 저는 다행히 어머니 마지막 삶의 마지막을 같이 할 수 있었으니 아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간병보험 하나는 들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제가 말년에 어머니처럼 정신 없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오. 간병을 누가 할 것이냐 하면서 형제들이 다시 다투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니예요? 아마도 그때 가서는 저를 본 척도 하지 않겠지만요. 그러나저러나 사람 얼굴도 알아보고 정신이 온전할 때 목숨줄을 놓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제 마음대로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제 자정도 넘었네요. 그놈의 비는 미친년 오줌발처럼 내리다 말다 하네요. 어찌 제삿밥은 많이 잡수셨어요? 제사에 얼굴 비추지 않았다고 너무 나무라지는 마세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형제들 앞에 시치미 떼고 앉아 있을 만큼 제 얼굴이 두껍지는 않거든요. 쯧, 쯧, 어머니 혀를 차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어쨌든 요새는 마음 편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제 걱정은 하나도 하지 마세요. <끝>





※ 2023년 <제주어 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품입니다. 원고지 83장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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