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유죄추정의 원칙 (1/5)

⁋이게 소설이라고?... 15

by 둘리아빠


- 곽 형은 치킨 좋아하세요?

- 치킨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 없으란 법은 없습니다만, 하여간에 우리나라에 치킨 체인점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 글쎄요, 전 세계 널려 있는 맥도날드 매장보다 많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몇 개인지는 모르겠네요.

- 그렇군요. 제가 조사해 보았는데 대략 3만 개 정도 된다고 하네요.

- 우와! 엄청나군요. 그거 믿을 만한 통계인가요?

- 농수산식품유통공사라는 회사가 있는데, 거기서 발표한 자료입니다. 믿을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 문 여는 가게도 많고 폐업하는 곳도 워낙 많아서, 정확한 통계를 잡을 수 없는 불가지의 영역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집계하는 순간에도 쉼 없이 계속 생겨나고 사라지니까요.

- 그런데 질문의 의도가 뭡니까? 단순히 숫자나 맞춰보라고 던지지는 않았을 테고.

- 뭐, 그냥 궁금해서요. 망할 걸 뻔히 알면서도 왜 체인점이라는 진흙탕 속으로 기를 쓰고 뛰어드는지. 마치 굶주린 들개가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 듯 말입니다.

- 그렇군요. 충분히 궁금해 할 만합니다. 혹시, 김 형은 ‘레밍 효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 레밍이라면…, 그 집단으로 자살한다는 쥐 말입니까?

- 맞습니다. 나그네쥐라고도 하죠. 그러니까 레밍 효과라는 게 주변에서 뭔가를 하면 우르르 따라서 하는 거죠. 이웃이 장에 가니 나도 줄레줄레 따라 간다고나 할까요. 저 잘난 맛에 독고다이처럼 사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덜하다 싶은 겁니다.

- 오호, 그럴듯한 분석이네요.


미세먼지와 황사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사월 중순의 오후였다. 탁한 대기는 만성적인 우울증을 앓는 아가씨의 불규칙한 생리처럼 일상이 되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쁘다는 예보를 들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챙겨 집을 나섰다. 거리에서, 차 안에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몸에 배었다. 코로나 19 덕분이었다.


평일 어정쩡한 시간대라서 그런지 커피숍은 한산했다. 커피숍이라면 으레 떠오르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 음악이 조용하게 흐르는 아담한 곳이 아니었다. 과장을 조금 섞는다면 축구장 절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게 넓었다. 오죽하면 상호에 경기장을 의미하는 ‘스타디움’이라는 단어가 붙었을까.


외양은 물류창고처럼 덩그러니 볼품없었지만 내부는 마치 호텔 로비를 연상시키듯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층고가 높고 중간에 벽이 없는 탁 트인 구조라 시야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이 시원했다. 테이블도 널찍널찍 배열해 놓아, 주의해서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옆자리 대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커피 값이 비싼 건 아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면 베이글이나 와플, 조각 케이크를 덤으로 주었다.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종업원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오늘도 곽과 나는 계산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푹신한 소파가 달린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시간과의 승산 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 김 형, 저도 통계로 가겠습니다.

작은 수첩을 품에서 꺼내 뒤적이던 곽이 입을 떼었다. 나는 호기심 많은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김 형은 우리나라에 법이 몇 개나 되는지 아십니까?

- 글쎄요, 대략 이삼백여 개쯤 되지 않을까요? 지자체 조례 같은 건 빼고요.

- 틀렸습니다. 현재 이 나라에는 법률과 시행령, 규칙처럼 법적 효력을 갖는 게 5천 개가 넘습니다. 지자체에서 만드는 자치법규까지 합치면 무려 15만 개에 육박한답니다. 가히 ‘법률 공화국’이라고 할 만하지 않습니까?

- 그러네요! 근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 법제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법령 통계가 나와 있더군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정도로 많을 줄은 미처 몰랐거든요.

- 살아가면서 그 거미줄 같은 법망에 걸리지 않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겠네요.

-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다만, 법을 어기더라도 적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뿐이지. 마치 음주 운전한다고 다 경찰에 걸리는 게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리가 수백 개 달린 외계 괴물처럼 법이 비대해졌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 말씀해주세요. 곽 형이 말했다시피 단순하게 숫자나 맞추는 건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 네, 저는 일종의 경고라고 봅니다. 수틀리면 코에 걸든 귀에 걸든 잡아넣을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는 말이죠. 협박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 엥? 누가요? 그리고 누구에게요?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죠. 지켜야 할 법이 많으면 사람들은 일일이 알 수가 없을 테고, 결국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범법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면 지배자들은 입맛에 맞게 선택하는 겁니다. 잡아들이거나 모른 척하거나. 그러니까 김 형의 운명이 순전히 누군가의 변덕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조금 무섭네요.


내가 이 시간에, 여기에 둥지를 틀다시피 앉아 곽이라는 사내와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것은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였다. 한갓 길고양이에게도 저만의 사연이 있을 텐데 마흔 중반을 갓 넘긴 쌩쌩한 남자가 평일 낮에 이렇게 빈둥거리는데 이유가 없을 리 없다.


나는 주식 시가 총액이 한때 우리나라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거대 공기업의 중간 관리자다. 그런데 부하 직원들에게 갑질했다는 이유로 지난 달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정직 2개월. 상사에게 시달리던 신입 공무원이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어 여론이 뒤숭숭할 즈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회식을 강요하거나 휴일 업무 지시, 법인카드 사적 유용처럼 일반적으로 ‘직장 갑질’이라고 불릴 만한 악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딴에는 직원들을 배려하려 최선을 다했다. 하찮은 성과에도 잘했다, 수고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먼저 나서서 회식하자고 한 적도 없었고 직원들이 싫어하는 회의도 줄였다. 아무리 어린 직원이라도 반말을 하지 않았고, 가능하면 내 생각보다 직원 의견을 수용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업무와 관련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내 존재 이유이자 월급쟁이로서의 정체성이기 때문이었다. 담당한 업무는 빈틈없이 처리할 것을 주문했다. 반복적인 실수는 따끔하게 지적했다. 업무 소홀로 유발된 민원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었다. 출퇴근이나 휴가 등 근태 관리도 엄격하게 했다.


직원들은 반발했다. 노조 게시판이 한동안 나에 대한 비난으로 도배되었다. 사소한 맞춤법이 틀렸다는 지적을 받아 모욕감을 느꼈다, 업무에 시시콜콜 간섭하여 도저히 같이 일할 수가 없다,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전형적인 꼰대다, 동료로서 인간적인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들 했다.


노조로부터 조치를 요구받은 회사에서는 나를 보직에서 물러나도록 하고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징계 사유는 조직 분위기 훼손 및 부하 직원에 대한 리더십 부족이었다.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리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했다.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정황상 그럴 거라고 판단한 듯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의 상사들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정년퇴직할 때까지 회사에 남아 있으려면 징계를 받아들여야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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