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유죄추정의 원칙 (4/5)
⁋이게 소설이라고?... 18
장 씨는 전직 택시기사였다. 회사 택시를 10년 이상 운전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개인택시 면허를 구할 작정이었다. 돈이 거의 모이고 면허를 수소문하는 중에 사고를 만났다. 장 씨는 자신이 사고를 낸 게 아니라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 초등학교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어. 횡단보도 앞에 정차해 있다가 주행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자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출발했지. 횡단보도를 다 통과할 때쯤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무언가 차에 부딪히는 소리였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 내가 사고를 냈구나 싶었던 거야. 재빨리 차를 멈추고 내려서 차 앞을 살폈지. 아무도 없었어. 그런데 차 오른편 뒤쪽에 어린애 하나가 나동그라져 있는 거야. 아마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너려다 자동차 뒤 모서리에 부딪혀서 튕겨나간 모양이야. 누가 보더라도 아이 잘못인데 부모들은 나를 몰아세우더군. 보행 신호가 아직 바뀌지 않았는데 차를 출발시켰다는 거야. 아이가 빨간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건널 리가 없다는 거지. 블랙박스도 무용지물이야. 일이 꼬이려고 했던지 하필 고장나서 이제저제 수리하려는 참이었거든. 부근에 CCTV도 없었고. 뒤늦게 사고 목격자 찾는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지만 연락 주는 사람도 없어. 경찰에서는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의 사고라며 입건을 하더군.
-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차 앞쪽도 아니고 뒷부분에 아이가 와서 부딪힌 걸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곽이 마치 제가 사고를 당한 것처럼 흥분하며 화를 냈다. 장 씨도 구둣솔처럼 거칠어 보이는 턱수염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목소리는 소개팅에서 번번이 퇴짜 맞은 노총각처럼 매가리가 없었다.
- 내 말이. 나도 경찰서에 가서 거품을 물었지. 그런데 경찰에서는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가져오라고만 하는 거야. 복장 터져 죽는 줄 알았다니까. 어쨌든 자동차와 사람이 부딪혔는데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으면 일단은 차가 잘못했을 거라고 추정하는 것 같애. 사람보다 차가 힘이 세잖아. 이제는 나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포기했어.
곽과 나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논박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의 능력이나 통제범위를 넘어선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대부분은 체념한 채 삶이 난도질당하는 것을 방관자처럼 지켜볼 도리밖에 없을 터였다. 곽이나 나처럼 말이다. 사고 때문에 장 씨는 택시회사에서 잘렸다. 개인택시 면허의 꿈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지금은 여기저기 일당벌이 노가다 판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사골 육수에 푹 끓여진 막창은 부드럽고 쫄깃쫄깃했다.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젓가락으로 막창 한 조각을 집어 고추냉이 푼 간장에 찍어 먹었다. 순대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장 씨가 자리를 잡고 술잔이 몇 순배 돌아도 곽의 가라앉은 기분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뜬금없이 소환한 ‘굴뚝 연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며칠 후에 경찰 조사가 예정되어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도 같았다. 마음이 심란하고 착잡할 터였다. 눈치를 보던 장 씨가 먼저 나섰다.
-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
- 그 나이에도 재미있는 일이 있나요?
곽의 맥 빠진 얼굴에 힐끗 시선을 던지며 내가 과장된 목소리로 엉너리를 부렸다.
- 재미에 무슨 나이가 있어, 그냥 웃기면 재미있는 거지. 일단 한번 들어나 봐. 얼마 전에 친구 전화를 받았는데, 내 집주소를 알려달라는 거야.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내게 편지할지도 모른대. 할 말이 있으면 전화나 문자로 하면 되지, 요새 편지 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했지. 그런데 이 친구 하는 말이, 조만간 자신이 교도소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거야. 급전이 좀 필요해 지인에게 빌렸는데 갚지 못해서 재판을 받을 거래. 아무리 해도 돈 나올 만한 데가 없어서 재판장에게 징역을 보내달라고 할 생각이래. 그러니까 교도소행은 따 놓은 당상이라네. 교도소 가면 할 일이 없어 심심할 테니 편지나 쓰겠다고, 그래서 아는 사람들 주소를 모으고 있다고 하는 거야. 어때 재미있지 않아?
- 재미있다기보다는 마음이 짠하네요. 그 이야기의 방점은 주소 알려달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돈 갚지 못해 교도소에 가야 할 형편이라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내가 눈치 없이 초 치는 소리를 하자, 장 씨는 팔짱을 낀 채 깍두기 국물이 살짝 밴 두터운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미간도 서서히 좁아졌다.
-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러네. 그리 친하지 않아서 빚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어. 알았다고 해서 내가 선뜻 도와줄 처지도 아니었지만.
- 장 씨 아저씨에게 뭐라 하는 건 아니고요, 일테면 그렇다는 얘기죠. 심각해하실 건 없어요.
자리가 더 무거워지기 전에 내가 서둘러 꼬리를 잘랐다. 그때 순대 접시 위로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흔히 볼 수 있는 집파리가 아니라 말벌만큼 커다란 똥파리였다. 청록색을 띤 몸통에서는 은은한 광택마저 돌았다. 파리는 고개를 바삐 주억거리며 주둥이 박기에 적당한 자리를 탐색하는 중이었다. 나는 오른손바닥을 반쯤 오므려 공간을 만든 다음 순대 접시 위로 재빠르게 휘둘렀다.
잡았다! 주먹 쥔 손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천천히 손바닥을 펴며 왼손 엄지와 검지로 파리를 집었다. 몸통을 붙잡힌 파리가 요란하게 날갯짓을 했다. 호기심 담은 눈길로 쳐다보고 있는 장 씨와 곽을 의식하면서 나는 파리의 오른쪽 날개를 떼어냈다. 그리고는 파리를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파리는 날려고 통, 튀어 올랐다가 테이블 위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쯤 세다가 나는 오른손 엄지와 중지로 구슬치기하듯 파리를 세게 쳐서 날려 보냈다.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던 파리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파리는 지저분한 식당 바닥에서 부질없는 날아오르기를 계속할 것이다. 달라진 자신의 처지를 깨닫거나 누군가의 무심한 발길에 밟혀 죽을 때까지. 내 행동을 말없이 바라보던 곽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 김 형은 지금 파리의 자유의지를 시험하는 건가요?
- 글쎄요, 파리에게도 자유의지란 게 있을까요?
- 날개가 하나 없어도 날려고 뛰어오르는 게 살고자 하는 자유의지 아닐까요?
- 살려는 욕망은 파리를 비롯해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 내재되어 있는 본능일 뿐입니다. 곽 형이 말하는 자유의지라면 적어도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의도적인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중단시키는 것 같은….
- 자살을 말씀하시나요?
- 예를 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 생각보다 잔인하시군요. 파리에게 자살을 강요하시다니.
곽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형광등으로 시선을 옮기며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또 뭘 잘못했나 싶어 속으로 움찔했다. 학교 다닐 때 심심하면 자주 하던 장난이었다. 한참을 침묵하며 술잔만 기울이던 곽이 묵직한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 그러고 보니, 제 신세가 누군가에 의해 한쪽 날개를 떼인 파리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졸지에 이 사회에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듯도 하고.
애써 바꿔놓은 분위기가 난데없이 나타난 파리 녀석 때문에 다시 침울해진 것 같았다.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주억주억하던 장 씨가 곽에게 말했다.
- 힘내시게. 그렇다고 당장 죽으라는 법은 없잖아. 그나저나 곽 형은 언제 집사람에게 털어놓을 생각인가?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 수는 없을 텐데. 일이 좋게 풀린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일단은 알려주고 나서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어야 하지 않을까?
- 그러게 말입니다. 알려줘야 하는데…, 아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요. 제가 결백하다는 것을 믿어줄지 자신도 없고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