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곽의 입장이 난감하기는 할 것이다. 나는 그래도 회사의 일이라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곽의 경우에는 드러내놓고 따지기도 애매한 문제였다. 특히 곽의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들이 꾸려온 사회적 관계들이 하루아침에 파탄이 날 수도 있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곽이 그런 논란에 휘말렸다는 것만으로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릇하고 부주의한 시선들을 온전히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가족 간 유대감이나 신뢰가 거대한 유조선의 닻줄처럼 단단하지 않다면,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니 곽의 지금 심정을 가늠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의 넓은 오지랖이 또 주책없이 끼어들었다.
- 곽 형은 가족을 동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건 또 무슨 말이요? 김 형은 내가 적과의 동거라도 하고 있다는 소립니까?
- 아,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가족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곽 형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설령 곽 형이 실수로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가족들이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같이 노력해줄까요? 일반적으로 가족이라는 존재는 그래야 한다고 하잖아요.
- 음…,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시면 대답하기가 곤란하네요. 그러고 보니 가족들이 내게 적대감을 가질 리는 없겠지만, 김 형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동지 의식이 충만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김 형에게는 남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후벼 파는 악취미라도 있는 겁니까?
- 그럴 리가요. 저도 따지고 보면 곽 형과 거의 비슷한 처지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죠.
- 역시 잔인하시군요. 그렇게 훅 들어와서 카운터를 날리시다니.
곽의 말투에서 공격적인 낌새를 감지했는지 장 씨가 재빨리 중재에 나섰다.
- 나도 거기서 거기야. 가족들에게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든 내 편이 되어달라고 손을 내밀지는 못 할 것 같아. 걔들도 제 인생 살아가느라 고단할 텐데. 곽 형, 세상 다들 그렇게 살고 있어. 김 형 말마따나 각개전투야.
장 씨는 ‘각자도생’을 ‘각개전투’로 받아들였다. 잘못 들었는지, 아니면 의식적으로 동어반복을 피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엇비슷하니 따지지 않기로 했다.
- 그나저나 요새는 통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 불안하고, 이대로 무력하게 앉아서 시간만 보내도 되나 싶기도 하구요.
술기운 때문인지 곽의 목소리는 호숫가의 새벽안개처럼 축축하고 흐느적거렸다. 어쩌다 보니 대화 주제가 심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장 씨가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곽의 말을 받아넘겼다.
- 그래서? 자살이라도 하시게?
곽이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속으로 곽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성범죄의 굴레가 덧씌워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할 법한 탈출구요, 만약 내가 곽의 입장이었다면 몇 번이고 떠올렸을지도 모를 생각 말이다. 장 씨는 곽의 답을 듣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 자살, 좋지! 내 인생은 누가 뭐래도 내 것이니까. 그런데 내 생각에는, 죽을 때 죽더라도 방법과 장소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 같애. 약을 먹거나 목을 매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거라 개성도 없어 보이고,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도 못할 짓이고 말이야.
- 그럼 다른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요?
- 아무렴, 사고처럼 보이는 자살!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사고로 위장해 사람을 죽이는 내용들이 많잖아. 그걸 흉내내면 어떨까? 내가 예전에 운전하고 다니다가 죽기 딱 좋은 곳을 한군데 알아 두었거든. S자 형태가 여러 번 겹치면서 꼬불꼬불한 내리막이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사고를 당했구나, 생각할 만한 곳이야.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가보자고.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아빠가 자살했다는 몹쓸 기억을 남겨두고 갈 수는 없는 거잖아.
- 그러면 죽음의 본질은 자살이지만 형식은 사고가 되는 거네요.
장 씨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던 곽이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 그런 말은 어려워서 잘 모르겠고. 어쨌든 주변 사람들에게 끼치는 민폐를 줄일 수는 있을 거야.
- 유익한 정보네요. 조만간 시간 내어 거기 한번 가봅시다.
- 허참,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말하네. 성급하게 굴지 마시게. 세상이 이처럼 넓은데 솟아날 구멍이 어디 없을라고. 조금만 더 고민해보자고. 우리에겐 남아도는 게 시간이잖아. 그리고 죽어버리면 이렇게 맛있는 막창국밥도 먹을 수 없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장 씨가 식당 아주머니를 불러 식어버린 국밥을 데워달라고 부탁했다. 곽이 일어나 주방을 향해 소주 한 병 추가요! 라고 외치며, 냉장고 문을 열고 술을 꺼내왔다.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데워 온 국물에 공깃밥을 말아 저녁 삼아 먹은 후에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이미 어둑해진 삼거리에는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감자탕, 꼬치구이, 치킨, 김밥, 삼겹살, 순부두, 생맥주 들을 파는 가게들이 대중없이 늘어서 있고, 편의점은 모퉁이마다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냥감을 놓치면 하루를 굶어야 하는 원시인마냥, 주인들의 절박감이 가게 밖으로 흘러나온 조명 속에서 일렁이는 듯했다.
망연히 그 풍경을 바라보다 세 사람은 각자의 방향을 잡고 돌아섰다. 장 씨는 열세 평짜리 주공 임대아파트로, 곽은 지은 지 삼십 년이 된 낡은 아파트로, 김은 대학병원 앞 다세대 빌라로. 등을 돌린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을 뒷머리께로 들어 흔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찢겨나간 파리의 오른쪽 날개가 새로 돋아나 팔락이는 것 같았다. <끝>
※ 2025년 <제주문학> 봄호에 「막창국밥」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원고지 85장 분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