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전지적 관찰자 시점 (1/5)

⁋이게 소설이라고?... 20

by 둘리아빠


“또, 시스템 버그야?”

엷은 냉기를 품은 잔바람이 힘겹게 겨울의 잔해를 밀어내는 삼월 초 어느 목요일 오후, 센터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내게 소리 질렀다. 커다란 덩치는 위압적이었지만 판다처럼 둥그런 얼굴이 유순한 인상을 주는 오십 대의 센터장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돌발 상황에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밤 와이프랑 다투었는지, 그러잖아도 아침에 출근할 때부터 내내 우거지상이었다.

“시스템 문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데이터 생성 패턴에 특이점은 없었습니다만.”

“이거 참, 귀찮게 됐네. 과거 행적 데이터부터 뒤져 보고 범위를 넓혀가면서 꼼꼼히 살펴봐.”

“네, 우선 타깃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보고, 필요하다면 가족들 동향도 체크하겠습니다.”


K가 사라졌다. 그의 부재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데이터 계측 시스템에 의해 감지되었다.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용천수처럼 쉬지 않고 솟아나던 K의 데이터 샘물이 얼마 전부터 완전히 말라붙어 버린 것이다. 흔하게 생기는 일이 아니라, 그 원인을 밝혀내야 했다. 인간이란 게 잘난 척은 다 하지만,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다. 설명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통제할 수도 있다는 믿음 하나로 위험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헤쳐왔다. 비록 그게 잘못된 판단일지라도 불안감을 얼마간 속일 수는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중앙에는 가로 10미터, 세로 5미터의 거대한 전광판이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전광판은 수십 개의 작은 화면으로 분할되어,‘타깃’들이 생성하는 데이터량을 유형별로 증권거래소의 주가 그래프처럼 실시간 보여준다. 타깃들은 회사의 데이터 전문가들이 나름의 알고리즘 작업을 통해 선정하는데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전광판을 마주하고 반원형으로 설치된 테이블에는 나 같은 데이터 관리원들이 각자의 모니터를 통해 담당구역 데이터 현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갓 서른을 넘긴 미혼의 남자인 나에게는 따분한 일이었지만, 가끔씩 K와 같은 사례가 튀어나와 무료함을 덜어 주곤 한다.


‘데이터’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게 있나 싶지만 그런 건 아니다. 타깃이 아침에 깨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생활하면서 만들어 내는 움직임들을 기호화 내지는 수치화한 것일 뿐이다. 기상 알람은 몇 시에 설정하는지,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무엇을 하는지, 화장실에 갈 때는 휴대전화를 들고 가는지 신문을 들고 가는지, 아침은 거르지 않는지, 먹는다면 메뉴는 뭔지, 출근할 때는 자가용을 이용하는지 버스를 타는지, 모닝커피를 즐기는지, 점심 메뉴로는 무엇을 선호하는지, 퇴근 후에 회식을 즐기는지, 술 마실 때 안주는 어떤 종류를 좋아하는지, 친구들은 자주 만나는지, 배우자와의 잠자리 빈도는 어느 정도인지…, 같은 것들이 우리가 관리하는 데이터 목록들이다. 걸음을 옮길 때 왼발부터 떼는지 오른발부터 떼는지와 같은, 도대체 어디에 쓸까 싶은 사소한 정보들도 차곡차곡 모아둔다.


이러한 데이터들을 얻기 위해 타깃들이 손에 달고 사는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TV, 인터폰, 노트북 등을 이용한다. 만성 가려움증 환자의 부스럼처럼 길거리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들도 뽑아낸다. 카드 결제 이력이나 온라인 쇼핑 내역, SNS 활동이나 인터넷 검색 기록, 앱 사용 정보 등은 말 그대로 데이터의 보물창고다. 개인의 신상에 대해 당사자들도 의아해할 만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준다. 타깃들이 근무하는 회사의 서버를 몰래 들여다보기도 한다. 한마디로 네트워크에 연결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용하여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비밀이다.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들은 본부 서버로 실시간 업로드된다. 본부에 모아진 데이터는 카테고리별로 분류되거나 통합되는 복잡한 알고리즘화 과정을 거쳐 개인별 프로파일로 작성된다. 이 프로파일이 내가 다니는 회사의 사업 밑천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데이터 관리원 역할을 맡았을 때, 나는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데이터들이 어떻게 돈벌이로 연결되는지 궁금했다. 의욕 넘치는 신입사원의 호기심을 가장하여 센터장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센터장은 나의 빈약한 상상력을 들먹이며 쯧쯧 혀부터 찼다.


“자, 사업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고. 일주일에 사나흘 술 마시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들지?”

“… 알코올 중독?”

“그것도 틀린 건 아닌데, 사업성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란 말이야. 그런 정보를 이용하여 돈 벌 방법이 없을까, 하는.”

“음, 잦은 음주로 간이 안 좋을 테니 간경화를 예방하는 약이 필요하겠군요.”

“좀 낫네. 그래, 그런 방식으로 생각을 굴려 가다 보면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어. 음주운전이 우려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요주의 대상이겠지. 또 술 마시느라고 생업을 소홀히 할 수 있으니 은행 같은 데서 대출을 꺼릴 수도 있고, 아직 결혼을 안 했다면 결혼정보회사에서도 피하고 싶은 고객일 테고 말야. 또 소주 회사라면 어떻게 접근할지 예상이 되잖아. 그러니까 특정인의 음주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런 정보를 필요로 하는 여러 곳에 팔아먹을 수 있다는 말이야.”


센터장의 설명을 듣고 보니 혼란스럽던 머릿속에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데이터를 통해 잠재적 고객을 발굴하고 사업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말하자면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K처럼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타깃들은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상품과 다름없었다. 그것도 화수분처럼 고갈될 우려나 유효기간이 따로 없는. 콘크리트 바닥 틈새를 뚫고 나오는 잡초처럼 억세고 질긴 자본주의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인간의 욕망을 해소하고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궁리된 기술들이 누군가의 탐욕에 봉사하는 꼴이랄까. 어쨌든 그런 귀한 존재가 갑자기 우리 눈앞에서 모습을 감춘 것이다.


나는 K의 과거 데이터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난 일주일 동안 서버에 업로드된 K 관련 데이터부터 확인했다. 수요일 오후까지는 휴대전화 통화나 문자 메시지, 인터넷 접속 기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런데 저녁 이후에는 포맷된 컴퓨터 하드디스크처럼 흔적 하나 없이 깨끗했다. K의 아파트 거실에 있는 스마트TV 카메라 렌즈를 통해 확보한 영상에도 그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가족들의 대화를 갈무리한 음성 데이터에도 그의 목소리는 없었다. 신용카드 결제 이력이나 K가 타고 다니는 차량의 블랙박스 정보, K가 사는 아파트 주변 CCTV 영상 파일들도 뒤졌지만, 의미 있는 데이터를 발견하지 못했다. 전원이 꺼졌는지 휴대전화는 먹통이었다. 실력 없는 얼치기 버블 아티스트가 만들어 낸 비눗방울처럼 갑자기 허공으로 퐁, 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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