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전지적 관찰자 시점(2/5)

⁋이게 소설이라고?... 21

by 둘리아빠


K는 시내 외곽의 35평 아파트에서, 아내와 삼 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삼십 대 초반 아들과 살고 있었다. 이 년 전에 결혼한 딸은 분가했고, 팔십을 넘긴 아버지는 5년째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다. 퇴직을 눈앞에 둔 공무원인 K는 공로연수 중이라 사무실에 출근은 하지 않았다. 외출하는 일도 거의 없고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집에서 보냈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잡다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며 소일했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게으른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움직였다. 하는 일 없이 꼬박꼬박 세 끼를 채우느냐는 아내의 지청구를 들은 후로는 점심을 걸렀다. 가끔은 아침, 저녁 식사 자리에도 빠지곤 했다. 금요일 저녁마다 혼자 소주 마시면서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게 유일한 낙인 것처럼 보였다. 미운 며느리 구박하는 시어머니마냥 아내가 졸졸 쫓아다니며 궁시렁거렸지만 귓등으로 넘겼다. SNS에는 관심이 없는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은 없었다.


올해로 결혼 삼십 년째인데 부부 관계는 그리 살가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직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앞서 가정을 꾸린 사람들에 따르면 부부 사이에는 대화와 스킨십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K는 아내에게 먼저 말 거는 법이 거의 없었다. 전화하는 일도 드물었다. 가끔 ‘오늘 사무실 회식’ 같은 간단한 문자 메시지만 보내는 정도였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용건들은 대부분 휴대전화 메시지를 이용했다. 집안에 함께 있을 때도 두 사람이 스킨십하는 모습이나 대화하는 목소리는 별로 잡히지 않았다. 둘이 잠자리를 함께한 지도 오래된 듯했다. 둘은 서로에게 궁금한 게 별로 없는, 그동안의 관성에 떠밀려 한 지붕 밑에서 동거만 하는 메마른 커플처럼 보였다.


K의 데이터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별 기대는 없었지만 아내에게서 추출된 데이터로 눈을 돌려 보았다. 아내의 휴대전화에는 수요일 오전에 K에게 보낸 문자가 한 건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 세 어절로 이루어진 아내의 메시지는 전원이 꺼진 K의 휴대전화 속에서 부유하고 있을 터였다. 그날 오후에 K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자 아내는 더 이상 K를 찾지 않았고, 나는 K의 행적과 관련된 실마리를 아내의 데이터에서 얻을 수 없었다. 이미 생성된 데이터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센터장 허락을 얻어 K의 집 안을 집중해서 들여다보기로 했다. K의 아파트에 있는 스마트TV, 인터폰, 휴대전화, 노트북, 아이패드, 로봇 청소기, 인공지능형 냉장고 등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기기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금요일 아침, 집 안 공기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는지 아내는 K의 방문을 열어 보았다. 전에 없던 행동이었다. 새로운 세입자가 방을 보러 오기라도 할 것처럼 방 안은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이불은 방 한구석에 얌전히 개켜져 있었고, 초등학생에게나 어울릴 법한 작은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평소에 책상이나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책들은 책장으로 옮겨져 있었다. K가 낮잠 잘 때 사용하던 싸구려 접이식 안락의자는 곱게 접혀 책장 옆 벽에 비스듬히 기대 놓았다. 이방인처럼 무심한 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던 아내는, 휴대전화를 들어 딸에게 전화했다. 딸은 지난해 초에 남자아이를 출산했고,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네 아빠, 혹시 거기에 갔니?’

‘아빠가 왜 여기에 와? 집에 무슨 일 있어?’

‘아니야, 됐어. 별일 없지?’

‘없기는, 요새 승현 씨 엄마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 아 글쎄, 지난주에는 말이야….’

한동안 시어머니에 대한 딸의 험담이 이어졌다. 아내는 아무런 대꾸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전화를 끊었다. 허공에 시선을 둔 채 거실 소파에 멍하게 앉아 있던 아내는 작은방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불러냈다. 160센티미터를 갓 넘을 듯한 키에 비해 몸집은 비대하여, 조금만 걸어도 숨을 헉헉댈 것 같은 아들 모습이 거실 벽면의 인터폰과 스마트TV 카메라에 잡혔다.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얼굴이 병이라도 앓는 것처럼 창백했다. 아내는 몰랐지만 아들은 요새 인터넷 게임에 빠져 취직 공부는 내팽개쳐 두고 있었다.

‘아빠, 어디 간다고 하지 않았니?’

‘아빠 집에 없어? 아, 그러네. 어제도 하루 종일 안 보이는 것 같던데. 혹시 시골에 가지 않았을까? 날도 풀리고 하니 텃밭 손보러 갔을 수도 있잖아.’

K는 시골에 낡은 집을 하나 갖고 있었다. 원래는 K의 아버지가 살던 곳인데,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간 후로 오랫동안 비워 두었다. K는 봄이 되면 시골집을 드나들며 텃밭을 일구는 눈치였다. 가끔씩 상추나 배추, 옥수수 등을 가져오곤 했지만 아내는 반기지 않았다. 오가는 기름값을 생각하면 차라리 사서 먹는 게 더 싸겠다며 K를 타박했다.

‘이 양반이 어딜 간다면 간다고 얘기를 해야지, 그렇게 말도 않고 나다녀서 어쩌겠다는 건지….’


K의 아내는 혼잣소리를 하며 시골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라는 음성 메시지가 돌아왔다. 아내는 휴대전화를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시댁’으로 등록되어 있는 번호였다. 내가 K 가족의 데이터를 관리하기 시작한 이후로 아내가 시아버지에게 전화한 적은 없었다. 시골집 전화는 K의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간 후 K가 통신사에 요청해 해지했다. 얼굴을 살짝 찡그리던 아내는 종료 버튼을 누른 후 유튜브 동영상을 불러냈다. 요새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여자 가수들이 벌이는 트로트 경연대회였다. 표정으로만 보면 아내는 K의 부재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K의 방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밤사이 연락도 없었다. 아내 행동에서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감지되었다. 아내는 늦잠 자는 아들을 깨워 시골집에 다녀오라고 시켰다. 시골집까지는 왕복 두 시간 거리였다. 귀찮아하는 아들이 먼저 시골집 이웃들에게 전화해 보자고 했지만, 아내가 알고 있는 전화번호는 없는 것 같았다. 툴툴거리며 떠난 아들로부터 최근에 아빠가 다녀간 흔적이 없다는 연락이 왔다. 아들의 전화를 끊자마자 아내는 K의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았는지 아내는 인터넷을 한참 뒤졌다. 복지사라는 사람으로부터 K가 이틀 전, 그러니까 지난 목요일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너희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며칠째 꼴을 못 보겠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아내는 딸에게 전화 걸어 K의 행방불명 사실을 알렸다. 약간 떨려 나오기는 했으나 다급하게 들리지는 않는 목소리였다.

‘어디 간다는 이야기도 없었고?’

‘시골집에도 안 갔고, 휴대전화는 꺼진 채로 아빠 방에 있고.’

‘사무실에 연락해 봤어? 친구들에게는?’

‘요새 네 아빠 사무실 안 나가셔. 친구들에게 전화했다가는 괜히 이상한 소문만 날 것 같고.’

‘그럼 어떡해!’

‘글쎄…, 김 서방이랑 모여서 한번 의논해 보는 게 어떠니?’

‘김 서방 요새 바빠, 나도 갓난애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고. 성호는 뭐래?’

‘걔도 취직 시험 때문에 남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더라.’

‘아빠가 남이야? 잘난 아들 이럴 때나 써먹어야지, 고이 모셔두었다가 무슨 은덕 입으시려고! 언제 가면 돼?’

아내는 내일 집에서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오후, K의 아내는 근처 마트에 들러 돼지갈비, 감자, 당근, 양파, 다진 마늘 등 갈비찜 재료를 잔뜩 사 들고 돌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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