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전지적 관찰자 시점(3/5)

⁋이게 소설이라고?... 22

by 둘리아빠


일요일 점심 무렵에 K를 제외한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앉았다. 유리창을 건너온 봄볕이 거실 바닥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K의 아내는 앞치마를 두르고 갈비찜과 잡채, 튀김 등의 요리를 했다. K가 집에 있을 때는 자주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갈비찜은 사위인 김 서방이 좋아하는 메뉴인 듯했다. 요리가 만들어지는 동안 그가 팥죽 단지에 생쥐 달랑거리듯 주방을 들락거리며 입맛 다시는 모습이 보였다.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을 둘러싸고 거실에 앉아 있는 다섯 사람의 모습이 스마트TV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원래부터 K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아내가 돌을 갓 넘긴 손자를 살피는 동안에, 아들과 딸, 사위는 식탁에 바투 붙어 앉아 갈비찜을 정신없이 먹어댔다. 먹성은 타고난 가족인 듯했다. 점심을 다 먹고 딸이 과일과 커피를 내올 때까지 K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우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며칠 수염을 깎지 않은 듯한 사위가, 기름기 번들거리는 입술로 커피를 마시며 K의 아내에게 말했다. 표정이나 말투에 걱정스러운 기색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치매에 걸린 이웃집 할머니가 가출했다는 소문을 나누듯 무심해 보였다. 아들과 달리 키가 멀대같이 큰 사위는 발목이 드러나는 빨간 양말을 신고 있었다. 삼십 대 중반인 그는 처남처럼 백수였으며, 요새 처가에서 커피 체인점 차릴 돈이나 빌려 볼까 머리를 싸매는 눈치였다.


‘내 생각에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 같은데.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네도 아니고’

아들이 매형의 말을 받았다.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미간을 모으며 딴에는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말투는 심드렁했다.

‘그럼 무슨 좋은 수가 있어?’

딸이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이 두 손바닥을 위로 향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입술을 앙다문 채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는 과장된 표정도 곁들여졌다. 낸들 알겠냐, 는 몸짓이었다.‘쟤는 꼭 남의 말하듯 하네.’라는 딸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갓난애를 안은 K의 아내는 거실 바닥에 시선을 둔 채 혼자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이것 참, 집 나간 멀쩡한 남자 찾는다며 전단지 돌릴 수도 없고, 길거리에 플래카드 내거는 것도 남우세스럽고….’


‘장모님, 일단 실종 신고는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어디서 변사체라도 발견되면 신고 된 사람부터 확인해 볼 테니까요.’

‘상구 아빠,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그럼, 아빠가 죽기라도 했다는 말이에요?’

‘아니, 일테면 그렇다는 얘기지. 장인어른이 꼭 죽었다는 것은 아니고.’

딸은 짐짓 화가 난 표정으로 남편을 흘겨보고는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엄마가 평소에 아빠에게 잘해주었으면 이런 사달이 나지 않지!’

‘얘는. 왜 화살이 나한테 돌아오니? 네 아빠에게 잘 못해 준 게 뭐가 있는데?’

‘엄마, 아빠에게 용돈 안 준 지 오래됐다며? 아빠 월급 통장은 엄마가 관리하고.’

‘아빠는 월급 말고도 출장비 같은 거 받아. 그걸로 용돈 쓰면 되잖니. 지금까지도 쭉 그래왔고.’

‘요새는 아빠 사무실 안 나가잖아! 그러면 출장 갈 일도 없을 텐데.’


아내는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물었다. K의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가끔 아르바이트 삼아 이것저것 할 때도 있지만 가족 생활비는 전적으로 K의 월급으로 충당해 왔다. 결혼 초부터 K의 월급 통장은 아내가 관리했다. 처음에는 용돈 명목으로 K에게 얼마간이나마 쥐어 주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K의 사무실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K는 이름뿐인 사내 동호회를 하나 만들었다. 동호회 명의로 회계부서에 요청하면 월급에서 회비를 미리 공제하여 별도 통장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K처럼 용돈 조달이 여의치 않은 동료들이 동호회에 가입했다. 집에서 눈치챌 수도 있어 빼돌리는 금액은 미미했다. 지금 아내가 모르는 K의 통장 잔고는 2백여만 원 정도였다.


‘혹시 장인어른이 바람이라도 피우는 게 아닐까요?’

사위가 불쑥 말했다. 딸이 무슨 소리냐는 듯 남편을 쏘아보았다. 아내는 풋,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내는 K가 그럴 깜냥이 안 된다는 것을 자신하는 듯했다. 나는 혹시나 싶어 K의 메일 계정을 들여다보았다. 아내의 믿음처럼 외도를 의심할 만한 흔적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에 실종 신고를 하면 회사에 알려질 텐데, 혹시 아빠 월급 안 나오는 거 아냐?’

휴대전화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아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질문을 던졌다.

‘처남, 음주운전 적발된 것도 아닌데 그런 걸 일일이 회사에 통보하지는 않을 거야. 알려지더라도 징계를 받거나 그런 게 아니니까 장인어른 월급에 영향을 주지는 않아. 어딘가에서 죽었다는 소식만 없으면 말이야.’


딸이 남편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시늉을 했다. 머쓱해진 사위는 딸의 시선을 피하며 애꿎은 갓난아이의 볼을 꼬집었다. 아이가 아빠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다음날 아들이 경찰에 실종 신고하기로 하고 가족회의는 끝났다. 딸이 집으로 돌아갈 때, 사위는 갈비찜 남았으면 싸달라고 K의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가족들의 대화나 행동에서도 K의 행방을 짐작할 만한 꼬투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 추측하건대, K는 지난 수요일 오후나 밤중에 집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K가 지나갔을 만한 경로의 CCTV나 블랙박스들을 뒤져 보아도 K 관련 데이터들은 찾지 못했다. 아파트 구내에도 CCTV가 널려 있지만 성능이 부실하여 K를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도로나 버스 등에 설치된 CCTV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설치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해상도가 조악했다. K가 의도적으로 사각지대를 골라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날 이후 K는 센터의 데이터 관리망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흔하지 않은 사례였다.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1백 회 이상 찍힌다는 CCTV 그물에도 전혀 잡히지 않았다. 인터넷 접속이나 카드 결제 내역도 전무했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아 위치 추적도 곤란했다.


K의 행불이 일주일을 넘어가자 센터는 긴장했다. 사방에 거미줄처럼 이중 삼중으로 깔린 센터의 데이터 관리망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네트워크가 연결되지 않은 외딴곳에 자신을 격리하더라도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활동까지 멈추지는 못할 것이다.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동네 슈퍼에라도 모습을 나타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집 밖에 노출되는 순간, 사방에 깔려 있는 센터의 예민한 촉수에 어떤 형태로든 인지되고 즉시 관리망이 작동할 것이었다. K가 어디선가 죽었고, 그 시신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게 아니라면 발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K의 실종 기간이 길어지면 센터는 시스템에 오류가 없는지도 살펴봐야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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