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전지적 관찰자 시점(4/5)

⁋이게 소설이라고?... 23

by 둘리아빠


나는 K 가족의 일상을 모니터링하면서 K와 관련된 기존 데이터들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두어 주 전 금요일 저녁이었다. K는 그날도 제 방에서 혼자 소주 마시며 인터넷으로 둘이 하는 고스톱인 ‘맞고’게임을 했다. 룰이 단순하고 승부욕도 적당히 자극해서 그런지, K가 자주 접속하는 게임이다. 한 시간쯤 후 게임 사이트를 빠져나온 K는 포털 사이트에서 유족 연금, 재산 상속, 무연고자 장례 절차, 사망 신고, 같은 키워드를 오랫동안 검색했다. 얼핏 K가 극단적 선택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별다른 단서들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흐르는 동안, K가 통장에서 예금을 인출하여 요양원 계좌로 송금한 데이터가 새로 생성됐다. K의 아파트로부터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소읍의 ATM기에서였다. 나는 은행 CCTV 영상을 확보하고 분석했다. 4월 중순인데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패딩 점퍼를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남자 실루엣이 찍혀 있었다.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있어 K라고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해상도가 떨어져 젊은 사람인지 나이 든 사람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작달막한 키와 빈약한 몸피로 보아 K일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판단했다. 요양원과 접촉이 없었던 K의 가족들은 모르는 사항이었다.


흐릿하게나마 실마리를 건진 나는, 문득 K가 가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출은 세상 두려운 줄 모르는 사춘기 애들 전유물이 아니다. 몇 년 전에 어른들의 가출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가족들에게 얽매여 늙어가는 삶이 덧없다고 느끼던 오십 대 전후 가장들이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남자가, 자본주의의 물질적인 삶에 푹 빠진 가족들을 견디지 못하고 무작정 집을 나와 버린다는 내용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즈음이었다. 그들은 가족과 연락을 끊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전염성 강한 호흡기 질환처럼 번지던 가출 행렬은 이삼 년쯤 지나자 소리소문없이 잦아들었다. 유행이란 게 원래 대꾸가 필요 없는 혼잣말 같은 것인지라 사람들은 금세 잊어버렸다.


K의 가출이 그런 이유로 유발되었다면 센터에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인간은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스스로 삶을 버리기도 하는 불가해한 생명체이니까. 하지만 데이터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 반발해 의도된 것이라면, 그러니까 네트워크 그물망을 벗어나기 위한 잠적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지금 세상은 데이터가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 구석구석에 혈액처럼 흐르고 있다. 인체에 피가 모자라면 정상적인 생존이 곤란하듯, 네트워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데이터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당연히 데이터 흐름을 방해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런 행동은 혈관 속에서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혈전처럼, 사회와 그 속의 인간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종양이다.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전에 신속히 차단하고 도려내야 한다. 대책 없는 직업병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세상일이란 아무도 모른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감당해야 한다.


K가 사라진 지 이십여 일이 넘어가지만 살아 있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정확한 소재는 파악하지 못했다. 가족들에게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실종신고를 낸 경찰에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때까지도 주변에 K의 실종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아들이 K의 휴대전화 잠금을 풀었다. 휴대전화는 패턴 인식 방법으로 잠겨 있었는데, 아들은 서너 번 만에 ㄹ형태라는 걸 알아냈다. 휴대전화 속에도 K의 실종 이유를 짐작할 만한 것은 없었다. K가 사라진 날에 들어온 엄마 문자 메시지 하나, 사흘 전에 사무실에서 보내온 직원 경조사 문자를 제외하고는 깨끗했다. 게다가 인사이동으로 곧 자리를 옮기게 될 직원의 정리된 책상 서랍처럼 K의 휴대전화 속은 단출했다. 사진이나 문서 등을 저장하는 앱은 텅 비어 있었다. 단말기를 구입할 때부터 기본적으로 기기에 깔려 있던 앱들도 대부분 삭제됐다. 전화 걸고, 메시지 주고받고, 인터넷 검색하는 기능 정도만 남겨 두었다. 아들은 메모장 앱에서 통장 계좌번호와 비밀번호처럼 보이는 숫자들을 몇 개 찾아냈다. 아들은 휴대전화 비번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아들이 휴대전화를 살펴보던 무렵에, 딸로부터 K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딸의 목소리에서 까다로운 문제의 정답을 힘들여 찾아낸 초등학생 같은 들뜬 기운이 감지됐다.

‘엄마, 아빠가 신용카드 사용하잖아? 카드사에 연락하면 카드 결제 내역 확인해 주지 않을까?’

‘아빠에게 카드 없는데….’

‘왜? 예전에 엄마가 카드 하나 만들어 주었다며?’

‘어, 그게…, 올해 초쯤에 아빠가 내게 돌려주던데. 출근하지 않으니까 카드 쓸 일이 없을 거라며.’

‘엄마!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했네. 용돈도 한 푼 안 주고 카드도 빼앗아 버리고. 그럼 아빠는 어떻게 살라고 그런 거야?’

‘아빠가 돈 쓸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러니?’

‘아니, 가끔 친구들 만나서 술도 먹을 수 있고, 직원들 경조사에 부조금이라도 보내야 하잖아!’

‘돈이 필요하면 엄마한테 달라고 했겠지.’

‘엄마, 아빠랑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아빠 성격 몰라? 그리고 성호 말 들으니까, 아빠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것도 뭐라고 한다며? 어디 안 나가고 집에 있으면 집에만 있다고 한소리하고, 외출하면 할 일도 없는데 쓸데없이 나돌아다닌다고 구박하고. 아예 아빠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지적질을 한다고 하던데?’

‘얘가.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니?’

‘아, 몰라! 아빠가 도망갈 만도 했네. 엄마가 알아서 찾아내든지 말든지 해.’


아내와 딸의 전화를 엿들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K의 카드 데이터를 다시 체크했다. 아내는 K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 대신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어 준 모양이다. K의 카드 사용 내역은 실시간으로 아내 휴대전화로 전송되었다. 카드가 사용될 때마다 아내는, 경비 지출을 관리하는 깐깐한 경리직원처럼 어디에 썼는지, 누구랑 썼는지 등을 K에게 따져 물었다. 그런 게 귀찮았는지 K는 출퇴근 차량 기름값 같은, 해명이 필요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카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카드 사용 명세서에는 이렇다 할 데이터들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이 끝날 무렵에 대학병원에서 십여만 원을 결제한 금액이 눈에 띄었다. 그 며칠 전에는 의원급으로 보이는 진료 기록도 있었다. 그리고 연말까지 한두 달 간격으로 의원과 약국에서 몇천 원씩 사용했다. 무엇 때문에 병원을 다녔는지, 무슨 약을 먹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진료 관련 데이터들은 공익 목적에 한해 제한적으로 활용될 뿐, 아직은 우리 회사 같은 장사꾼들에게는 막혀 있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라지만, 조만간 접근이 허용되고 활발하게 거래될 것이다. 돈이 되는 거라면 심장이나 간 같은 장기도 사고파는 세상인데, 그깟 개인정보 따위가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는 없을 테니. 어쩌면 K의 실종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이터였지만 더 이상 파고들 방법이 없어 아쉬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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