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8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어렵게 회사에서 버티며 정년퇴직을 했는데, 가족으로부터 구조조정을 당했다. 더 이상 내게서 효용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아내는 한 달 내에 집을 나가 줄 것을 내게 통보했다. 그 통보는 일방적이었으며, 생활비는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모른척했다.


☞ 내 시간을 내가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자유다...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에게 자유라는 단어는 의미가 없다. 내 시간을 누군가를 위해 써야 한다는 것, 내가 내 시간의 관리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


☞ 학교 건물과 운동장의 배치는 군대를 닮았어. 한번 상상을 해 봐. 교문을 들어서면 널따란 운동장이 있고, 교문을 마주한 연단이 서 있고, 연단 뒤로 학교 건물이 일자로 서 있어. 매주 월요일마다 or 매월 한 번씩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전체 조회를 하고, 교장이 연단에 올라가 훈화를 하고...연단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장은 마치 군대에서 부하들에게 호통을 치는 연대장을 연상시키지 않니?


☞ 군대 경험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회의 운영방식이 군대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군대를 견뎌냈는데 사회생활을 견뎌내지 못할까?...우리나라 사람들은 군대 경험을 공유하면서 ‘사회화’된다. 불합리하더라도 상명하복을 내재화하는, 힘에 의한 질서를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부정적 사회화다.


☞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불합리를 경험해야 하는 것인가?. 그는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다. 자연법칙과 달리 세상살이는 누군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세상의 질서를 정하는 사람들. 그들이 정해 놓은 질서를 우리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라며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 힘들게 키워서 비정규직을 만들려고 애를 낳는다는 게 미친 짓이다. 아이를 낳아서 사교육업자를 먹여 살리고, 등록금에만 목매는 대학을 먹여 살리고, 취업학원을 먹여 살리면서 고작 비정규직을 만들라고?...애를 낳아야 할 이유를 도대체 찾을 수 없었다. 혼자 살기도 힘든데. 동거까지는 생각할 수 있다. 뭐, 어쩌다 결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낳지 않겠다. 아이까지 먹여 살릴 돈을 벌 자신이 없다. 아이를 낳는 순간 내 인생은 사라진다.


☞ 빚이 있으라, 했더니 빚이 생겼다. 이 땅에 사는 사람 열 명 중 일곱 명은 등에 빚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빚을 갚지 않고 죽으면 그 빚은 아이들에게 넘어간다. 평생 갚지도 못할 빚을 안고 태어나는 아기들의 기분은 어떨까?


☞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그의 거짓말을 믿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날은 손에 꼽을 수 있었는데, 그가 정신없이 바쁠 때였다.


☞ 언론은 대통령 후보의 말을 실어 나르기에 바빴다. 그 말이 사실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과거 보도 내용을 검색만 해보아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사회의 목탁이라는 언론의 기능은 간 데 없고, 성능 좋은 스피커 역할을 하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 소설이나 에세이 글을 읽다보면, 학창시절에 자신이 좀 튀는 아이였다는 사람은 거의 찾을 수 없다. 대부분 친구들도 별로 없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자체가 없었던 아이라고들 한다. 그들의 주장은, 그렇게 얌전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나름 잘 살고 있다는~...


☞ 고등학교 2학년 때 급훈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그것도 한줌 의심의 여지없이. 예전에는 근면,성실, 정직 같은 게 대부분이었다. 노력, 최선도 있었고 조금 생각하는 선생님이라면 자율성, 창조성, 다양성 같은 조금 고차원적인 급훈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담임 선생님은 외모처럼 평범한 것을 싫어했다. 우리 반 급훈은 ‘꿈은 개나 주어라’였다. 꿈꿀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하라고 했던가...


☞ 동창회에 가면 꼭 상대의 존재를 확실하게 규정지어야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알고 있는 듯 다가오는 사람인데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을 때, 그냥 애매하게 웃어넘기지 못하고 끝까지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성이 차는 사람 말이다...


☞ 구조조정, 희망퇴직, 정리해고, 인력조정, 조직혁신...회사원들이 두려워하는 사자성어...회사생활의 유한성을 처절하게 깨닫도록 하는 단어...언제라도 회사에서 잘릴 수 있다는 것을 품위 있게 알려주는 단어들..


☞ 그는 운 좋게도 삼십 년 동안의 직장생활 동안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의 위협을 항상 두 어깨에 걸머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슬아슬함을 알지 못했다.





⁂⁂ 소설을 쓰는 데는 세 가지 원칙이 있으나. 불행히도 그 원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윌리엄 서머싯 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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