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의 글쓰기
☞ 그는 말 속에 가시를 담아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날카롭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은, 절제된 고통을 주는 가시. 아픈 줄 모르고 그 가시에 계속 찔리다 보면 결국 허물어지고 만다.
☞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무리한 삶의 양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명품 중독, ‘자연인’ 행세,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 원하지 않는 출산...
☞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주거지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미래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결혼은? 아이들은? 노후대비는?...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을 살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
☞ 광장이 없는 도시...도시에 광장이 없다는 것은 뭔가 불순한 의도가 느껴진다...숨겨진 억압의 기운 같은...
☞ 장례식 날에나 꽃을 받는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 사랑이란 것을 커다란 솥에 넣고 20년이나 30년쯤 줄창 끓여대면 무엇이 남을까? 권태, 증오, 짜증, 우울감...네가 아궁이에 힘겹게 장작을 던져 넣으며 끓이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런 게 아닌가?
☞ 그는 자신의 하루를 돌아볼 새도 없이,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그는 자신의 지난 하루를 꼼꼼히 들여다보았으나 특별하게 내세울 게 없었다...잘한 일, 아쉬운 일을 두 개씩 노트에 적어놓고서야 잠이 들었다...자신의 하루를 따박따박 돌아보고 나서야 잠이 드는 사람은 얼마나 피곤할까?
☞ 그녀는 IMF가 뭔지, 미국발 금융위기가 무얼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IMF의 의미는 사람들마다 달랐다...비정규직에게...중소기업 사장에게...대기업 월급쟁이에게...지방직 공무원에게...일용직 노무원에게...건물주에게...예금 이자로 먹고사는 사람에게...
☞ 그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집을 떠난 적이 없다...그는 집을 나설 때 나중에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매번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그가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아침에 내가 출근할 때마다 아내는 저녁에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안다. 그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나는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 고향 시골 마을 한가운데 엉뚱하게 들어선 이층집...높은 돌담으로 집안은 가려져 있고...누가 사는지 소문만 무성하고... 외제차가 들락거리고..마을 앞길이 포장되고,,.도로 한가운데 보기 싫던 전봇대가 옮겨지고... 누굴까?
☞ 세상을 완전하게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세상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시험에서 백점을 맞아야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시험을 보면 매번 50점 대를 밑도는 친구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문제를 놓칠 수 있지? 사람이니까 실수를 한다 치더라도, 평균적으로 90점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점수를 받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장난을 쳐대는 친구들의 무신경함...
☞ 비탈에 불안하게 서 있는 느낌...아래로 미끄러지려는 발 끝에 힘을 잔뜩 주면서 버티는...
☞ 꽃 향기에도 질식해서 죽을 수 있다는 걸 모른다...
☞ 아버지는 약을 거부했다. 아침에 겨우 밀어 넣은 약이 점심때까지도 이빨 사이에 끼여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아버지의 혀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건가? 엄청 쓸 텐데...
☞ 내가 세상을 향해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결정적인 패가 있다면...적의 급소를 알고 있다면 한결 여유로울 수 있을 텐데...
☞ 나를 둘러싼 시간의 흐름이 멈추어 선 것처럼...그래서 아직도 서른 살쯤을 살아가는 것처럼...사람들은 나를 할아버지로 바라보는데...
☞ 그에게 직장은 환상의 세계였다. 자라면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이 나라에서 회사를 제대로 다니려면 학교와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데, 그는 검정고시 출신이다. 체중 미달로 군대도 면제 받았다...이 사회에 미리 적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 평소에 익숙하던 것들이 이상해져 보인다면, 네가 나이가 들었다는 거야. 세월이 네 시야에 시간의 더께를 씌어 대상을 이상하게 보이도록 하는 거야...너는 그대로 인 것 같지? 아무 것도 변하지 않고 예전 그대로인 것 같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변한 것만 같고...시간은 편파적이지 않아. 누구를 봐주고 하지 않는다고...시간은 네 곁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아니야. 그냥 휙, 하고 빛처럼 지나 가버려. 네가 채 깨닫기도 전에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 간다...시간은 네 곁을 지나가는 게 아니라, 네 몸 안을 관통해서 지나가지. 잔인하게 흔적을 몸통에 새기면서.
⁂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몽둥이들 들고 영감을 찾아 나서야 한다. - 잭 런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