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12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책장이 놓여 있는 방 한구석에 기타 케이스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케이스 속의 기타를 본 적은 없었다. 혹시, 케이스가 비어 있는 것은 아닐까?...장식품으로 케이스 안에 있는 기타는 쓸모가 없다. 케이스만 있으면 족하다...현관 입구에 골프가방을 세워둔다. 골프채가 없는 빈 가방이다. 현관을 드나드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식용이다.


☞ 내 삶이라는 게, 살아간다는 게, 세상살이라는 게 꼭 아귀에 맞게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신문사...그들은 신문을 파는 게 아니라 독자를 파는 거야. 언론이라는 게 기사로 독자를 꾀어내 광고주들에게 파는 사업이라고. 당연하게 독자들이 읽는 기사보다는 광고주들에게 신경을 쓰게 되지.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이 있다고 쳐보자. 기자들이 매번 입에 달고 다니는 ‘알 권리’를 위해 꼭 알려줘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 내용이 광고를 실어주는 기업에게 불리한 것이라면 신문사들은 어떻게 할까?


☞ 비리는 비리에 의해 덮여진다...사람들의 성격은 이상해. 1억 원을 횡령했다고 비난하던 이들이, 누군가 천만 원을 꿀꺽했다는 소문이 돌면 1억 원짜리는 금세 잊혀져버려.


☞ 내 인생을 복제한다면 교환가치가 있을까?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복제해서 판매한다는 것이다...아이들에게 내 인생을 복제하여 살아가게 할 수는 없을 터이다...누군가 내 인생을 복제해 살아도 되느냐고 물어온다면?...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의 형태는 지적재산권처럼 등록하도록 하여 보호되고, 이를 따라 하려는 사람들은 사용료를 내야 하는 사회라면?...내 인생과의 유사성을 이유로 사용료를 청구한다?...내가 만든 노래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고 교환가치가 없으란 법은 없다.


☞ 그는 살아오면서 역사나 사회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학교 다니는 내내 반복하다보니 머리통 한구석에 꽉 박혀 어찌해볼 수 없는 ‘국기에 대한 맹세’ 말고는 특별한 다짐을 해본 적도 없다.


☞ ‘부지런한’은 예술가 앞에 붙는 수식어로는 왠지 어색하다...부지런하다거나 근면하다는 단어는 노동자, 그러니까 몸통을 움직여야만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들에게나 어울린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고독한’이란 수식어는 그 반대다. 고독한 예술가는 멋있어 보여도 고독한 노동자는 뭔가 어색하기만 하다고 사람들은 느낀다.


☞ 언론이나 출판물,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집단적 기억을 왜곡해 사회적 통제나 통합을 도모하려는 세력이 있는 줄 모른다고?


☞ 나는 소설을 쓴다. 소설을 쓰는 틈틈이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를 소설가라, 작가라 부른다. 편의점 사장도 나를 ‘김 작가’로 부른다. 놀리는 기색은 없다. 부러움이 섞여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인식하는 나의 정체성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생활비는 편의점 사장이 한 달마다 하얀 봉투에 담아서 내게 주는 알바비로 해결한다. 헷갈렸다. 내 본업은 소설가인데, 밥벌이는 편의점에서 한다. 나의 정체성은 나의 밥벌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원고를 넘긴 출판사에서 ‘자비 출판’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돈을 벌려고 쓴 글인데, 책으로 만들려면 힘들게 편의점에서 벌어온 돈을 들이부어야 하다니...


☞ 증명사진, 초상화, 캐리커처... 장례식의 영정사진으로 초상화나 캐리커처를 사용하는 사람...자신의 비문을 미리 정해 놓은 사람...어느 유명 시인을 흉내낸 것은 아니다...삶은 어쩌면 자신의 묘비에 쓸 문장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인지도...출생연도와 사망일자만 적혀 있는 무미건조한 비석...


☞ 그에게는 고민하면서 선택해야 할 갈림길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가야할 길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그는 아무런 갈등 없이 그 길을 선택했다.


☞ 마음은 어지러웠으나 지배적인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가려낼 수 없었다...내 감정을 좌우하는 지배적인 느낌을 내세울 수 없다는 초조함...


☞ 아내는 가끔 나이든 소녀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아내가 소녀를 연기할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대책이 없었다.


☞ 인간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죽음이다...삶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과정은 다르지만 결국은 죽음이라는 목적지에서 모두 만난다...


☞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어딘가를 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급한 볼 일이 있으면 강한 바람이 불고, 별로 급할 게 없다면 선들선들 약한 바람이 분다...우리가 바람이 분다, 라고 말하는 것은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우리 나름으로 표현한 것이다...






⁂⁂ 플롯이 시들해지면 인물에게 총을 쥐어주어라. - 레이먼드 챈들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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