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13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상황을 납득하며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상황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납득이 안 될 때는 소설을 썼다. 나름의 상상력으로 상황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 그의 앞에 정해진 길은 없다. 그러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가 걸음을 옮기는 곳이 곧 그의 길이 되었다...길이 정해진 인생은 불안하다. 그 길을 벗어나는 순간 그는 불안해진다. 그 길 이외의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평생 그 길만 걸어가다 인생을 마치게 된다.


☞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 중 누가 생각을 많이 할까?...생각은 여유로움의 그림자일까?...여유가 없으면 생각도 줄어들까?...생각이 많다는 것은 살만하다는 걸까?...하루 살기가 힘들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지 않을까?


☞ 겉봉에 손글씨로 보내는 이와 받는 이가 적혀 있는 우편물을 받아본 적이 까마득하다... 내가 받는 우편물의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보내온 것이다. 문득 내가 아는 사람들로부터 편지나 택배 같은 우편물을 받아본 기억이 까마득하다는 것을 깨닫는다...친구에게 손 편지를 적어서 보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 나는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와 다를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로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것은 뭐랄까, 증기기관을 가지고 제트비행기를 어떻게 만들까 걱정하는 것과 같은?...어쨌든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능력으로 미래의 문제를 너끈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내 능력이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더라도 나를 둘러싼 상황이 문제를 해결 가능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복잡한 ‘경우의 수’를 지금 미리 따져볼 필요는 없다...미래를 걱정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우스운 일이다. 미래가 되면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모습일 것이다. 미래 자체도 지금의 내가 상상하는 모습과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을 기준으로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게, 거북이가 끄는 마차를 타고 전쟁에 나서는 것처럼 말이 안 된다.


☞ 제목으로 내용 파악이 가능한 책과 그러지 않은 책... 소설은 전자, 인문학 같은 교양서적은 후자... 전자는 나침반 없는 항해와 같아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후자는 실패할 확률이 적다. 제목이 아니다 싶으면 처음부터 집어 들지 않을 테니...사랑하는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던 시절도 있었다. 시집이나 소설책이 연인들 사이의 선물 목록에 들어 있던 낭만적인 시절...


☞ 나는 너가 있음으로서 비로소 나로 존재한다...너가 없을 때 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너가 있음으로 나의 존재증명은 쉬워진다...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서는 타인이나 다른 사물이 필요하다.


☞ 삶이 생각보다 고달프다고 그때마다 차 문을 안으로 닫아걸고 연탄을 피워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노년의 시간이 되면... 말이 어눌해지고, 기억하는 능력이 줄어들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지고, 세상에 대한 투정이 늘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누군가 자신을 해코지할 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억지를 부리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체험에 대한 과장이 심하고...


☞ 대화란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묻고 다른 쪽이 대답만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그걸 뭐라고 해야 하지?


☞ 개를 사람 대하듯 하면, 개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개인 줄 알게 된다.


☞ 스마트폰을 쓴다고 스마트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스마트해질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항상 당하고만 살아갈 수도 있는 게 세상이다...스마트에 대한 왜곡된 집착...


☞ 예전에는 새해 수첩을 마련하면 전화번호부터 옮겨 적었다. 지난해 수첩을 보면서 수첩의 맨 뒤쪽에 전화번호를 적을 수 있는 부분에 옮겨 적는다.(더러는 주소도 적는다) 나름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라 해도 수십 명 수준이다. 대부분 집 전화번호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수첩에 전화번호를 적는 페이지는 사라졌다. 스마트폰에는 수백 개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1년이 가도 전화 한번 오고갈 일이 없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 젊은이라면 지향해야 할 어떤 가치나 목표 같은 게 있었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야 한다는 암묵적으로 강요된 분위기가 있었다. 때로는 과격한 시위와 발언을 통해 자신의 선명성을 주장하기도 하고...그러나 이제는 부자가 되는 것, 취직을 하는 것 외의 추구해야할 가치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특별하게 내세울 것도 없는, ‘거기가 거기’ 인 인생들...그의 삶은 언제나 비주류의 그것이었다.


☞ 직장은 허술하지만 일상을 지켜주는 방패막 구실을 한다. 방패막이 사라지는 순간 일상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여유가 있을 때 새로운 안전장치를 여분으로 마련해 두어야 한다. 직장이라는 보루 하나만 믿고 일상을 운영해오던 사람들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사유로 직장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 정확한 단어와 거의 정확한 단어의 차이는 번개와 반딧불이의 차이다. - 마크 트웨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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