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15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그는 사람을 의심하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을 믿었고 사람들은 언제나 그의 믿음을 배신했다. 그는 그 배신을 금방 잊어버렸다.


☞ 항상 한쪽이 이기는 부부싸움은 위험하다. 아무리 칼로 물베기라지만 싸움은 싸움이다. 지면 기분이 나쁘다. 미움이 뒤따른다...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싸움이라면서도 양보할 줄 모른다. 항상 이기려 든다.


☞ 세상은 대부분 제로섬 게임으로 굴러간다.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게 되어 있다. 하나를 둘로 나누는 방법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손해 보는 느낌 때문이란다.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 요사이 그를 둘러싼 지배적인 감정은 체념이다...요사이 그의 일상은 체념의 감정이 지배한다...체념의 감정은 세 끼의 식사처럼 시간을 정하여 그를 찾아온다...그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순간에 죽음을 생각하곤 한다...


☞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달려온 결승점이 고작 죽음이라니...어떤 경주로를 달려왔든 모든 이들의 결승점에는 결국 죽음이 있을 뿐이다...죽음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기 위해 인간들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셈이다.


☞ 가족들이 나 없이도 잘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면 내 존재감에 대한 서글픔이 몰려온다...가족들이 내 존재의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때... 가족은 사회가 내 삶을 통제하기 위한 인질에 불과하다... 내가 사회의 질서를 따르고 엉뚱한 모험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 저축이라니! 나는 그 단어의 의미를 금방 떠올릴 수 없었다...저축, 적금, 저금이라는 말보다 대출, 담보, 사채 같은 단어가 더 내게 친숙하다...노후를 대비해서 저축은 좀 해야 합니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속이 뒤틀린다. 내게 저축, 이라는 단어는 로또를 떠올리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질적인 단어다...그의 수첩에는 로또와 관련지어야만 의미가 있는 단어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예를 들면,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한달 간 살기 같은 것들....


☞ 그는 생각하는 데 서툴다. 일단 저지르고 본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면서 헤쳐 나간다. 비효율적인 삶의 방식이다...먼저 생각해보라. 그런 후에 뛰어들어라. 행동보다 생각이 먼저다. 그 방식이 비용과 시간이 덜 든다...광고는 일단 해보라고 한다.(Just Do It!) 웃기는 이야기다. 여유가 있는 놈들에게나 어울리는 충고다. 앞뒤 안 재고 뛰어들었다가는 피박 쓰기 딱 좋다. 먼저 헤아리고 나서 덤벼들어야 한다.


☞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언어를 잊어버렸다...회사를 그만두는 순간에도, 자신보다 나이가 스무 살쯤 적은 부장에게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하게 퇴직 인사를 하였다..


☞ 모니터를 세 개나 쓰는 신입사원...회사에서는 두 개까지는 제공한다. 하나는 자기 돈으로 구입해서 쓰고 있다. 화면마다 다른 내용들이 올라와 있다. 업무 시간에 허튼 짓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책상이 모니터로 꽉 찬 느낌이다...옆에서 근무하는 이 대리는 영 불편한 얼굴이다.


☞ 삶의 파고에 맞서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모른 척 피하는 것도 살아가는 방법이다...삶의 파고를 피하면 비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살지 못한다...삶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맞서려는 사람이 있다...삶의 모든 순간에 자신의 용기를 증명할 필요는 없다.


☞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자기 나름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때로는 인생을 건 전쟁을 벌이기도 하고, 때로는 한 끼의 식사나 간식거리를 얻기 위한 소소한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그게 전쟁이든 전투든 이겨야만 한다. 지는 순간 삶은 비틀거린다.


☞ 업무적으로 완벽한 직원은 환영받지 못한다. 관리자의 존재 필요성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적당히 완벽하지만 관리자가 개입할 여지를 주는 작은 허점이 있는 직원이 사랑받는다.


☞ 아내의 옆에 있으면 언제나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면박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었다.


☞ 불행은 야간에 기습해오는 적군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다...예고된 불행은 불행이 아닐까?


☞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끼리 통용되는 상식이나 행동방식 같은 게 있었다. 그런 걸 알지 못하면 어울리지 못하고 심하면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등 SNS에 자신의 일상을 등록하여 광고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부분 여행지에서의 행복한 모습이나 아이들, 귀여운 동물들의 사진들. 그래서 어쩌란 말인지? 부러워 하라고? 나는 이렇게 행복하게 산다고?...현실에서의 행복 결핍을 가상 현실 속에서 만회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 퇴직을 하는 순간 세상에 대한 나의 지분이 줄어든다.


☞ 집을 나갔다가 삼 년 만에 돌아온 어머니는 나에게 뭔가 받아낼 채무라도 있는 것처럼 당당했다.


☞ 회사 생활 30년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 각인된 사회적 가면...사회적 웃음과 꾸며진 예의... 본심은 숨기고 상황에 어울리는 언어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상황에 가장 적정한 단어가 무엇인지...뒷탈이 없는 단어를 고르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실수를 하지 않을까 매번 조바심하며 자신의 의견을 다듬어야 한다.


☞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은 효용이 다했다. 백지장에 손만 대는 사람들을 감안하면, 백지장 같이 가벼운 것은 혼자 들게 해야 한다.


☞ 종이에 그림과 숫자를 적어 넣어서 ‘돈’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으면, 사람들은 그 돈을 얻기 위해 돌진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게 다 그런 식이다.





⁂⁂ 짧은 단어를 두고 긴 단어를 쓰지 마라.

빼도 되는 단어라면 언제든지 빼라.

능동태로 쓸 수 있는데 수동태로 쓰지 말라.

- 조지 오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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