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의 글쓰기
☞ 옆에 누가 있는 게 싫었다. 가족이라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도 번거로운데,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말해 무엇하랴...마음을 써주어야 한다는 것, 때로는 내 의지를 접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줘야 한다는 것...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에 대한 껄끄러움...
☞ 요금 청구서의 깨알같은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내는 사람...청구서의 오자를 발견하고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기어코 알려주는 사람...
☞ 내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서 나는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나를 거쳐간 시간들이라고 해서 내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그는 인간관계라는 게 결국은 뭔가를 주고받는 일종의 거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니 줄 게 없으면 관계라는 게 성립하지 않는다...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인간관계는 허약할 수밖에 없다.
☞ 사람들은 나를 고지식하다고 생각한다. 인정한다. 삼십 년 가까운 공무원 생활을 통해 내 성격은 규정과 지침, 관례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직업이 내 성격을 만들어낸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 살아가면서 대책 없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고...막막하다는 느낌 이상의 좌절감을 느낄 때...죽음을 생각해야 할 만큼의 절망감!
☞ 밭에 갓난아이를 데리고 가서, 하얀 광목으로 줄을 만들어 아이의 허리춤에 묶어 놓고, 자꾸 돌아보면서 김매기를 하는 여인...그렇게 자란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 그는 얼굴 전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기쁠 때는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크게 입을 벌려 웃었고, 못마땅할 때는 얼굴 근육 전체를 일그러뜨리며 찡그렸다.
☞ 인간의 조상들이 수렵채집에서 농경생활로 생활양식을 바꿀 때 느꼈을 공포감...과일이나 나무껍질을 먹다가 곤충이나 육식을 하기 시작할 때의 두려움 같은 거...
☞ 인간은 뇌의 용량을 늘리고 소화기관의 용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뇌에서 사용되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소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말이다...결국 많이 먹을수록 소화를 위한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고, 뇌로 갈 에너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그러니까 뚱보는 상대적으로 멍청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을 지나친 육식으로 사냥감이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불안정한 환경에서는 잡식성 동물이 생존에 유리하다..
☞ 특정 아이템에 반응할수록 인터넷은 유사한 아이템만을 보여주고, 결국 내 세계는 편향된다...알고리즘이 내 시야와 사고를 방해하는 세계...
☞ 살아가는데 돈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돈 밖에 모르는 삶이나 모든 게 돈과 관계를 맺는 삶은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 엉뚱한 상상력으로 퍼즐 조각을 맞추는 능력을 갖고 있다...털끝만한 단서라도 있으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상황을 유추하고 그럴듯한 가설을 만들어낸다.
☞ 그는 모든 일에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인생을 보냈다. 적당히 양보하고 적당히 눈 감아주고 적당히 참아주고...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 사법체계는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런데 그 체계의 주요 구성원인 법원과 검찰은 자신들의 무오류성에 대한 막무가내적인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 과일들은 자신의 씨를 뿌리기 위해 맛있는 과육으로 인간을 유혹했다. 과육 속에는 씨가 숨어 있다. 과육을 줄 테니 씨를 여기저기 뿌려달라는, 인간과의 공생이다. 그런데 인간이 과일들과의 협의도 없이 씨 없는 과일을 만들어내면서 공생관계는 박살난다.
☞ 그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성격이 이기적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무책임하게 그에게 다가오는 폭력적인 단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방법이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무시하곤 했지만, 자주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면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말들은 아예 들리지 않게 되었다.
☞ 내 능력과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 해서 자동적으로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사람 사는 세상에서 패배자가 운신할 공간도 만들어주어야 한다...패배자가 운신할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이다?
☞ 누군가를 꼭 눌러야겠다는 승부욕이란 게 훈련을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승부욕은 식욕이나 성욕처럼 본능적인 감정이다...그는 세상살이의 모든 것을 승패가 있는 게임으로 바라보았다.
☞ 노력한다고 모든 게 해결된다면 세상 살기가 편하지...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게 되어 있는 게 이 세상이야...그가 듣고 싶은 건 더 노력하라, 라는 하나마나한 말이 아니다. 살다보면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말이다.
☞ 그는 희망을 유예하는 데 익숙하다. 내일은 달라질 거야. 나이가 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아내의 생각도 달라지겠지...
☞ 야구경기의 에이스 뒤에서 경기를 마무리하는 계투용 투수처럼...누구나 에이스가 될 수는 없다. 계투나 마무리 투수같이 궂은 일을 맡아서 처리해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 사람의 외모는 그에 대한 모든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극적인 연애소설을 쓴 소설가가 150kg이 넘는 뚱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작품에 대한 감동은 달라질 것이다.
☞ 운동을 같이 하는 아이의 친구가 워낙 특출한 실력이 있어 팀이 우승했을 때, 우승을 기뻐하면서도 그 친구 때문에 아이의 존재감이 손상되었다고 느끼는 학부모의 감정...친구가 없었다면 우승도 못했을 테지만...아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친구만큼의 실력이 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그래도 친구의 존재는 껄끄럽다.
☞ 스트레스는 머리를 타격하는데 정작 반응은 장에서 온다...설사를 하고 변비로 고생하고,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한다.
☞ 프로야구의 2군들처럼, 내가 일상에서 슬럼프에 빠졌을 때 잠시 활력을 보충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마련 되어 있었으면...
☞ 일단 시험을 통과하여 채용되면 평생이 보장되는 체계...비리나 무능력으로 강등되면 크게 화제가 되는 세상...공무원이 일을 잘못해서 손해를 끼치거나 사회적 민원을 야기하면 그에 따른 패널티를 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직급의 강등을 포함해서 말이야...한번 올라간 직급은 내려올 줄 모른다. 내려오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웬만해서는 내려오는 사람이 없다.
⁂⁂ 좋은 명사와 강력한 동사를 썼다면 형용사를 굳이 더할 필요가 없다. - J. 앤서니 루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