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의 글쓰기
☞ 어머니는 아버지를 집안의 가구처럼 대했다. 아버지도 없는 존재처럼 행동했다. 가족들의 대소사에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지 않았다...아버지는 건강보험의 부양자로서,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 청구서의 명의로, 자동차 할부금 납부자, 자동이체용 마이너스 통장의 명의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적금통장이나 살고 있는 아파트, 상가나 토지의 명의 등 뭔가 돈이 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어머니의 명의로 되어 있다...아버지는 하루 종일 집에서 책만 읽었다. 어머니가 책 살 돈을 주는 것도 아니어서 주로 도서관을 이용했다. 일주일에 한 번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다녀오는 것을 빼고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가끔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통신요금이 많이 나온다며 타박을 하자 그만두었다...정년퇴직을 하고 나서의 아버지의 모습...
☞ 코로나로 인한 팬더믹은 그의 삶에 치명타를 가했다. IMF사태나 세계 금융 위기보다도 더했다. 영업시간이 저녁 아홉 시로 제한되자 찾는 손님이 크게 줄었다. 정부에서 선심 쓰듯 영업시간을 한 시간 늘려주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선택하는 행위는 포기하는 행위와 동시에 이루어진다. 무언가를 고른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는 버린다는 말과 같다.
☞ 천천히 걸어야 보인다...걷는 속도와 보이는 것은 반비례한다. 속도가 빠른 만큼 공간은 압축된다.
☞ 그의 자신감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나왔다. 그러나 그 믿음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그도 잘 몰랐다.
☞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일이 내 인생에 남아 있을까?...나는 살아오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좌절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내 인생은 평온했고, 그만큼 재미가 없었다.
☞ 아버지는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매번 병원을 뛰쳐나왔고, 그때마다 증상은 악화되었다...아버지는 몸이 안 좋을 때마다 병원에 입원을 했고,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퇴원했다. 병원의 규칙적인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 아버지는 집에서 돌아가셨다. 가족들은 부담스러워했지만 아버지는 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입원을 시키려 한다면, 스스로 목숨를 끊겠다고 가족을 협박하기까지 했다.
☞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언제라도 자신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그는 언제부터인가 휴대 전화의 비밀번호를 해제했다. 휴대 전화를 통해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기능도 항상 켜두었다. 자신이 죽었을 때 살아남은 자들이 휴대 전화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랬다.
☞ 가족과의 인연이 끊어지자 세상에 무서운 것들이 줄어들었다...가족은 그가 세상과 맞서는데 가장 약한 고리였다. 그렇다고 가족을 버릴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세상과 맞서지 않고 타협했다.
☞ 내가 퇴직을 하는 순간, 아내는 낡은 가구를 버리듯이 나를 내칠 것이다. 어쩌면 조금의 시간을 줄지도 모른다. 양심 때문은 아니다. 자신에게 명분을 주기 위해, 자신이 그렇게 악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한 시간이다. 두어 달쯤 예상한다. 성마른 아내의 성격에 집에서 빈둥거리는 나를 가만히 두고 볼 인내심은 없다. 나의 착각이기를 바라지만 희망사항일 것이다.
☞ 꼭 인생이라는 싸움터에서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만큼 버티기만 하면 된다...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버티는 것도 힘들었다. 마치 누가 오래도록 버틸 수 있나는 시험하는 것 같았다.
☞ 내가 세상에 특별히 요구하는 게 없으니, 세상도 나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말았으면 한다...그냥 내 맘대로 살고 싶다.
☞ 아이들은 아빠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지 자기 엄마의 확인을 거쳤다. 엄마, 아빠는 이런 말을 하는데 맞아요?...어느 순간부터 그는 가족들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아내는 가족 간에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들만의 대화에 그가 낄 자리는 없었다.
☞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 對 내게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단어 하나도 아니고 음절 하나도 아니고, 고작 모음 하나가 문장의 의미를 완전히 뒤바뀐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했다.
☞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움직임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움직임이 없는 존재는 세상으로부터 배제되고 무시당한다.
☞ 사람들이 만든 모든 제도는 폭력 앞에서 무력하다...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제도라도 폭력이라는 날 것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제도가 나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누군가 바라보는 곳에 내가 있어야 한다. 나의 존재를 아는 이가 없다면 제도는 아무런 힘을 주지 못한다...폭력은 지금도 가장 편리한 해결방안이다. 폭력의 효용성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른 문제해결 방식을 답답해한다.
☞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생활하니 말이 줄어들었다...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니 상대의 표정을 지레짐작하여 기분 나쁘다며 싸움을 거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 확진자 발표는 일상이 되었다...점심을 먹을 무렵에 재난 안내 문자가 떴다. 오늘 확진자 몇 명, 어제보다 몇 명 증가...당연히 점심식사 자리의 만만한 화제는 확진자 동향이었다.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부장과의 점심자리 화제거리를 위해 신문을 뒤적거려야 했던 그로서는 다행이었다.
☞ 어쨌든 사회생활의 성패는 연기력이 좌우한다. 누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내느냐 하는 것이다. 업무능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부를 때마다 호칭이 어색했다. 사십 대 중반이나 오십 대 초반 쯤 되는, 키가 작고 몸도 통통한 그녀에게 아주머니라고 부르면 화낼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직원들처럼 ‘여사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여사라는 게 원래 남의 부인을 높여서 부르는 말, 사회적으로 이름이 있는 여자를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녀들에게 여사님이라 부르는 게 뭔가 그들을 놀리거나 조롱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그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좋아한다. 야단스럽지 않으면서도 뭔가 있어 보인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별 부담이 없는 호칭이다. 사장님이나 회장님같이 값싸게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중년의 아줌마에게 ‘선생님’이라 부르기는 아직도 어색하다. 그의 뇌리에 박혀 있는 선입견 때문이다.
⁂⁂ 노부인이 비명을 질렀다고 쓰지 마라.
노부인을 데려와서 비명을 지르게 하라.
- 마크 트웨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