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33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게이트볼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운동장 형태나 게임방법은 머릿속에 어른거렸지만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검색창에 ‘노인들이 즐기는 골프 비슷한 운동’이라고 입력했다. 화면을 맨 아래까지 내리자 두세 시간 하면 8천 보의 운동효과를 볼 수 있어 인기라는 게이트볼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아, 게이트볼이었지!


☞ ‘언니’라는 호칭의 무차별성은, 개인적인 자아의 소외를 불러온다...‘언니’라는 호칭은 그녀를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친근한 척하지만 개인적인 자아를 찾을 수 없는 무의미한 호칭일 뿐이다. 마치 아저씨, 형씨, 이모, 고모, 삼촌, 막내라는 호칭처럼.


☞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자신이 설계하고 지어야 할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미술학원, 태권도학원, 음악학원, 바둑학원 등을 보내어 건물의 기초를 다진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결혼을 시키고 나서~ . 문제는 건물이 언제나 건설 중이라는 사실이다. 엄마가 죽기까지 그 건물은 결코 완공되지 않는다.


☞ 혼자 산다는 게 홀가분할 수도 있지만, 살아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존재증명을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은 어제도 오늘도 똑같았다. 그 안에서 사람들의 삶도 변화가 없었다. 너무 진부했다. ..세상은 탐색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일 뿐이다.


☞ 그의 모든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내 마음이 문제일 것이다. 그의 모든 말이나 행동에 시비를 걸려고 내가 작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물코가 아주 촘촘한 마음이라는 그물을 펼쳐놓고 그의 말과 행동을 걸러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 고통은 고통으로서 치유된다. 그게 자기 고통이든 타인의 고통이든....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타인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반응일 수 있다.


☞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필요도 없다...실망한다는 것은 관계의 끈이 아직은 희미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이라는 감정을 소비하는 것도 아깝게 된다.


☞ 가족의 죽음에 오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부재는 쉬이 잊혀진다...누군가의 부재를 마음에 오래 붙잡고 있을 만큼 세상이 한가롭지는 않다.


☞ 아내는 자신을 엄마나 며느리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봐달라고 했다. 나는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데, 라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 내가 편하다는 것은 누군가 뒤에서 고생한다는 말이다. 출근 전에 배달된 신선한 우유를 먹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시간에 자지 않고 배달을 해 주어야 한다.


☞ 인터넷으로 클릭 두어 번으로 주문하면 집에까지 배달해주는 택배시스템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상품을 준비하고, 포장하고, 분류하고, 지역별로 배부하고, 다시 집까지 오게 만드는 종합적인 체계가 갖추어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편리한 제도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생각한 것보다 늦으면 버럭 화를 내곤 한다.


☞ 몸으로 하는 운동이라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기구를 이용한 운동을 잘한다는 말도 아니다. 한마디로 모든 운동에 젬병이었다.


☞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소심한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선천적으로 그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 바이칼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아내와 단둘이 앉아 호수 위를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듣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어 본다.


☞ 그는 식당이나 술집에 들어가면 종업원이 물컵을 어떻게 집는지를 유심히 관찰한다. 종업원의 손가락이 컵의 어느 부분에 닿아 있는지를 확인한다. 입술이 닿는 컵의 윗부분을 쥐고 있다면, 그는 그 컵을 사용하지 않는다.


☞ 그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가족을 외면했다...가족을 돌보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했지만 정작 가족들의 욕망이나 고민을 돌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 하루를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휴가를 받았다. 그냥 위독하다고 하면 휴가를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사흘째 아버지는 생명의 끝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고 있었다. 휴가는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회사에 사실을 알리고 싶지만, 이미 동료들 몇몇으로부터는 조위금까지 받은 상태라 그럴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야 하는 걸까?


☞ 코로나 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의 목록이 크게 줄어들었다...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두어 달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거나, 영업의 자유가 보장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10시 이후에는 영업을 하지 말라거나, 5명 이상은 모이지 말라거나, 열이 나는데 여행을 다녔다고 소송을 당하거나... ‘그런 게 어딨어?’라는 물음에 ‘그런 게 있을 수도 있어’라는 대답을 주저 없이 할 수도 있게 되었다.



☞ 똑같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처지에, 왜 나이 좀 먹었다고 특별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인들은 그 나이만큼 즐겼으니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좀 양보를 해줘도 되는 거 아니냐고!...잘 살아보겠다고 앞으로만 달려가다 보면 늙고 병든 노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에 불과할 뿐이다.


☞ 병아리들을 데리고 땅까불을 하던 어미닭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요란스럽게 홰쳤다.


☞ 인생의 계절은 맥락이 없다. 가을이 되기도 전에 사라지는 인생도 많다...인생을 사계절로 나누어야 한다면 스물도 되기 전에 요절한 인생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그는 인생의 가을 문턱에 다가섰다,는 표현은 정확한 게 아니다. 내일 쯤 교통사고로 그가 생을 마감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가 죽는 순간 계절은 곧 겨울이 된다.


☞ 그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통제하기를 원했다. 그러다보니 자신에게 주문이 많았다...불안하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이나 의지가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이다.


☞ 아내에게는 아내만의 언어가 있었다.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넘어가지만 그는 아직도 그 언어를 완전히 해독하지 못했다. 갈등은 언제나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언어가 있어. 사람들은 그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해. 그러니까 상대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그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하는 거야.






⁂⁂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작가 쓴 인물이라고 해서 다들 작가처럼 말하는 건 아니다.

- 앤 라모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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