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34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죽음이 앞에 있다면 더 이상 꿈을 꾼다는 게 무의미한 일이다... 꿈이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 그는 단순하게 보이는 일도 복잡하게 만드는 별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게 그의 천성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다.


☞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은 상처를 통해서 성장한다고 말한다. 상처가 스승이라고. 하지만 상처는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덧난다. 심하면 죽기까지 한다. 상처를 치료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도 없는데 상처를 심하게 입으면 병신이 되거나 죽을 수밖에 없다. 성장은 개뿔!


☞ 터미널과 가까운 도심 네거리 한쪽에 번듯한 건물이 삼십 년 넘게 방치되어 있다. 소문에는 건물이 도로의 경계를 침범해서 준공 허가를 받지 못한다고 했지만, 확인할 도리는 없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건물의 외관은 비교적 온전했다. 창문이 깨어지거나 낙서나 쓰레기가 쌓여 있지도 않았다.


☞ 아들은 나를 이해한다고 했다. 나는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무슨 재주로 나를 이해한다는 말일까?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아들이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 살아가는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삶을 마감할 때는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죽는다.


☞ 내가 지금 누리는 보잘것없고 비루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은, 어느날 그 일상이 무너졌을 때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 인생이라는 게 손익계산을 따질 수 없을 때도 있다. 손익을 따지다보면 세상에는 할 일이 별로 없다...하나하나 손익을 따지다보면 사람을 사귀기도 힘들다.


☞ 타인과 관계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일이다...아이를 키우는 일은 사람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인내력을 내게 심어주었다. 아이들을 둘이나 키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인내력이 쑥쑥 자란다.


☞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힘들면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야 한다...그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선천적으로 싫어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 구름이 모인다고 언제나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바람에 습기가 배어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 늙으면 모험이 두려워진다. 오죽하면 바나나가 익기 전에 죽을지도 몰라서 덜 익은 바나나는 사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을까.


☞ 가족들의 바램과는 달리 아버지는 쉬이 돌아가시지 않았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서 대기하던 동생은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 한동안 ‘응원’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힘들 때 힘내라고 누군가가 기운을 북돋워 준다는 의미. 나는 어쩌면 가족에게서, 특히 아내에게서 그 단어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아내가 내 삶에 응원군이 되었던 적이 있었을까? 아무리 궁리해도 떠올릴 수가 없다.


☞ 이름 대신에 별명을 불렀다. 주로 곤충 이름이거나 과일, 민물고기 이름이었다. 개구리네, 딱정벌레네, 청양고추네 같은~, 우리 가족은 애호박네였다.


☞ 이해관계가 없으면 갈등도 없다...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그들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를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 시골에는 시골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이것을 단순히 외지인에 대한 ‘텃세’라고 돌려세운다면 그들로서는 억울한 일이다...“너무 말 쉽게 하지 말어! 우리가 뭘 어쨌다고 텃세라는 거여, 우리는 조상 때부터 이렇게 살아왔어. 당신들이 뭔데 남의 마을에 들어와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거냐고.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데 가서 살면 될 거 아냐!”


☞ 낚싯바늘에 걸렸던 물고기는 풀려나더라도 온전한 삶을 살기가 힘들어진다. 낚시에 걸렸던 입천장이 헐어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다. 거기다 낚싯바늘에 걸렸던 악몽이 살아 있는 내내 그놈을 괴롭힐 것이다.


☞ 여자들이 수다스러운 것은 진화의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편이 딴 여자랑 놀아나지 않을까 싶어 정보 수집이 필요했고, 주변의 같은 처지의 여자들과 대화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다 보니 수다스러워졌다는 것이다. 말이 된다.


☞ 해고통보를 카카오톡 메시지로 받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 위원장은 책을 많이 읽었다. 아니, 읽는 것처럼 보였다. 신간이 들어올 때마다 두세 권씩 빌려갔다. 도서대출부에도 다른 직원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대출 횟수가 많았다. 빌려간 책은 일주일 쯤 지나서 반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있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위원장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한 속임수가 아닐까. 독서 활동에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광고. 확인할 도리는 없다.


☞ 마음만 먹으면, 내가 3년 전 어느 날 인터넷에서 무엇을 검색했는지도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물론 내 기억의 밑바닥에도 남아 있지 않은 일이다.


☞ 자신이 힘들여 만들어 놓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어느 순간 자신이 접근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성역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그 울타리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멈출 수 없다. 관성일 수도 있지만 궤도를 이탈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 꿈을 갖는다는 것은 세상과 한번 겨뤄보겠다는 의지다...꿈이라니? 아직도 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정신 나간 사람이 있단 말인가! ...꿈이라는 단어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부려 먹기 위해 내세우는 사탕 같은 것이다.






⁂⁂ 소설은 실제처럼 구체적이고 생생해야 한다.

시체를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독자의 팔에 시체를 안겨줘야 한다.

- 정유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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