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의 글쓰기
☞ 삶이 다르면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다르다. 같은 장소, 같은 사건을 겪어도 시선이 다르면 기억도 다르다. 관계가 달라도 기억이 다르다...내 기억은 나의 경험과 시선이 반영된 것이다. 같은 사물이나 사건을 두고도 경험과 시선이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같을 수 없다.
☞ 그는 자신이 서구적인 취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자살을 하더라도 목을 매거나 음독, 연탄불 피우는 것들은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면 권총 자살을 할 것이다.
☞ 자신이 노력만 하면 굶지 않고 살수는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부조리한 사회를 지탱한다. 그들은 자신의 가난이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잘 사는 것은 그럴 만한 능력이 있고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한다. 그들은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불행은 온전히 그들의 탓이라고 받아들인다...'성과주의'라는 종교가 심어준 맹목적인 믿음.
☞ 지금 내가 죽는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간다고 해서 세상에 도움이 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걸 알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단순한 거래의 수단이나 부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지켜야 할 질서가 정해져 있다...
☞ 짜장면이면 다 같은 짜장면이지, 누구는 3천 원짜리 먹고 누구는 8천 원짜리를 먹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게 말이 되는 세상,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사회라고 다 같은 사회가 아니다. 사회라는 몸통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서 사회를 움직이는 도덕이나 질서 같은 게 만들어지는 사회가 있다. 반대로 무정형의 집단에서 나름의 지향하는 도덕이나 명분, 질서, 목표들을 실천하기 위해 사회를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내용물이 없이 일단 그릇을 만들어 놓고 이것저것으로 빈 그릇을 채우는 것과, 내용물에 어울리는 그릇을 세심하게 만들어가는 사회의 작동 방식과 운영 방향이 같을 리가 없다.
☞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삶에 ‘꼬리’를 남기지 않았다... 굶어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빚을 지지 않으려 했고, 물건을 사더라도 후불 결제로 이루어지는 카드보다 현금으로 처리했다. 할부 구매도 하지 않았다...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더라도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기는 자신의 흔적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 학교라는 게, 기존의 사회 질서를 재생산하기 위한 도덕이나 가치 같은 것들이 반복해서 주입되는 곳이다.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학교 울타리에서 배제된다. 그게 선생이든 학생이든... 조직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결국은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잃을 게 너무 많은 싸움은 피하는 게 좋다...싸움에서 이기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 싸움을 통해서 잃을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 왜 약자는 항상 선하다고 하지? 약자가 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일종의 동정심 같은 거...
☞ 사람들은 질문을 받으면 우선 답을 찾으려고 한다. 질문에 문제가 있는지, 옳은 질문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러면 먼저 질문을 던진 자가 유리한 패를 쥐게 된다.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그 질문이 적절한 것인지 답이 있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 내 앞에 사과가 있다. 나는 사과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눈에 사과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내 눈 앞에 사과가 있기는 한 걸까. 혹시 수박이 있는데 나는 사과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면 별 좀스런 생각을 다하게 된다.
☞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내가 직접 보았다고 그게 언제나 진실이 될 수는 없다...모든 일에는 맥락이라는 게 있다. 내가 보는 것은 순간적인 사건일 뿐이며,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맥락을 알아야 그 사건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 하얀 고무신이라고 표현했을 때와 흰 고무신이라고 표현했을 때의 미묘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 무릇 문장을 다루는 사람들은 하얀 고무신과 흰 고무신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녀는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는 말의 비수를 속에 품고 있었다...그녀와 대화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언제 그 비수가 가슴을 후비며 들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아무런 변명이 되지 않는다. 말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보여준다.
☞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고 당신을 모두 좋게, 긍정적으로, 호의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당신이 겸손한 것은 당신이 그럴 만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당신이 겸손과는 다른 차원의 행동을 보인다면, 당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가에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오만함을 비난할 것이다.
☞ 그는 결혼이라는 게 ‘물물교환’이라고 생각한다. 남자가 가지고 있는 것과 여자가 가지고 있는 것,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인 것들까지를 포함해서 서로의 상품을 새로운 가정이라는 시장에 벌려놓고 거래를 하는 것이다. 거래가 성사된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일반 상거래에서 그렇듯 둘이 살아가는 동안에 끊임없는 애프터 서비스가 필요하다. 애초부터 그들이 갖고 있던 것들이 완벽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 그는 자신의 이름의 ‘만년’이라는 게 꼭 운명처럼 느껴졌다. 성이 오 씨이니, 오만년 과장이다... 직원들은 그 앞에서는 오 과장님,이라고 불렀지만 자기들끼리는 꼭 오만년 과장이라 이름을 붙여 불렀다. 그러고 나서는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만년 씩이나 과장이라니, 참 힘든 인생이지 않을까 하는 안스러움이 묻어 있는 듯했다.
☞ 엄마는 그녀 때문에 이혼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엄마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리고 그때의 여러 상황을 고려한다면 엄마의 이혼을 막은 것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엄마는 전기요금의 자동이체를 어떻게 하는지 조차도 몰랐었다.
⁂⁂ 뭔가를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다.
할 말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것이다.
- F.스콧 피츠제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