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37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현대의 도시 뒷골목은 서사가 별로 없다...예전처럼 골목에서 살아 움직이던 삶의 모습들 - 아이들이 뛰어놀고, 과일이나 생선을 파는 차량 스피커 소리가 들리고, 솜사탕 파는 리어카들, 옆집에서 부부싸움을 했다는 소문 같은 것들 - 을 찾아볼 수 없다.


☞ 그런 사람이 있지. 무슨 물건이든 진열을 좋아하는 사람. 그의 방에 들어가면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탁자 위나 화장대, 책장 등에 빼곡히 늘어서 있어. 하찮은 물건이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는 주어야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야. 서랍 같은 데 처박혀서 일 년 열두 달, 있는지 없는지 주인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쌍하겠어.


☞ 노숙자의 존재는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위안이 된다.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그나마 행복하다는 허위의식을 선사한다.


☞호칭을 바꾸면 의사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질 거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이 신기했다.


☞ 경찰에서는 외부 침입 흔적이나 외상이 없으면 대부분 자살로 추정한다. 거기다가 유서가 발견되면 거의 자살이라고 확정한다. 보도 자료에는 정확한 사망원인을 수사 중이라고 하지만 결과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 동료가 심근정지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사무실내에 퍼졌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하긴 동료의 죽음에도 아무런 애도의 분위기가 없었던 곳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런 연대감이나 동료애도 없이 동일한 공간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는 존재들에 불과했다.


☞ 그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가지지 못했는지를 일부러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무난하게 시간을 보냈다.


☞ 세상사를 인과관계로만 바라본다면 너무 안이하고 빤한 것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항상 염두에 둔다면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산을 쓴다. 비가 오기 때문에 우산을 쓰는 게 당연한 세상의 인식이다. 그러나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걷는다면 세상의 평범한 인식에 구멍을 낼 수 있다.


☞ ‘두루뭉실’이라고 입력하니 자동으로 ‘두루뭉술’이라고 변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두루뭉실은 두루뭉술의 북한어 표기란다. 나는 그동안 두루뭉실을 표준어로 알고 있었는데...


☞ 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스스로 가난하고 무능력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사회는 비정하다.


☞ 어른이라면 말을 골라서 할 줄 알아야 한다...아이도 아니고,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거야?...그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그는 말을 할 때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그냥 입에서 만들어지는 대로 내뱉는다.


☞ 그는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그의 나이가 쉰여덟이라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서른도 되지 않은 여직원들은 그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아빠는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몸을 인정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마다 두 시간씩 아파트 구내의 헬스장에서 달리기를 한다.


☞ 마치 자신이 세상의 표준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가 보기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오만함이었다.


☞ 그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능하면 ‘책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김 부장의 사전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그의 사전에는 생각, 변화, 가능성 같은 단어들도 없을 것 같다...그가 가지고 있는 사전은 아마도 얄팍할 것이다. 그가 쓰는 어휘는 보잘 것 없었다.


☞ 부자들은 자신들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 인공지능이 공정하다고? 인공지능이 먹어 치우는 데이터들이 편견이나 차별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면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 인공지능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들이 공부하는 교재들이 편향성이나 선입견을 잔뜩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면...쓰레기를 먹으면 쓰레기를 배출할 수 밖에 없다.


☞ 그의 삶에는 그가 어쩔 수 없는 ‘상수’들이 너무 많다...삶이란 어쩌면 ‘상수’를 줄이면서 스스로의 운신의 폭을 넓혀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 새벽 두어 시라도 전화만 하면 치킨이나 족발 같은 야식거리를 배달해주는 편리함은, 야식증후군이라는 질병을 불러왔다...심야 배달이 늘어날수록 남편의 뱃살도 깍짓동처럼 덩달아 불어났다.


☞ ‘시발 비용’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홧김에 저지르는 행위에 따른 비용이란다...급하지 않은 화장품을 산다거나 기분이 꿀꿀하여 계획에 없던 술을 마시는데 드는 비용이다.


☞ 문 위쪽 벽에는 ‘당신의 미래를 바꾸고 싶은가, 그러면 당신의 생각을 바꾸라’는 문구가 하얀색 아크릴 판에 고딕체의 검은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 돈은 살아서 움직인다...돈은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돈을 따라가지 말라.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단순하다. 가난한 자는 돈을 따라가지만, 부자는 돈이 따라오게 한다...돈이라고 다 같은 돈은 아니다. 부자가 갖고 있는 돈의 가치와 가난한 자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 아내가 싫은 게 아니었다. 지금도 아내를 생각하면 안쓰럽기만 하다. 시댁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아이들에게도 대놓고 무시를 당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아내다. 그런 아내와 한 공간에 있는 게 싫었다. 혼자 있는 아내와 같이 있는 아내는 달랐다. 아내에게 잘해주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곁에 있으면 짜증부터 난다.





⁂⁂ 작가는 자기가 만드는 세계에 대해 신처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선 파리 한 마리도 멋대로 날아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정유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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