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38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그는 아내와 살면서 생활의 주도권을 쥐어본 적이 없다. 아내는 가정의 모든 것을 혼자 결정했지만, 자신이 독재자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아내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독재자였다. 나는 독재자 밑에서 신음하는 백성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그가 반역을 꿈꾸는 순간, 아내는 그의 카드를 정지시키고 용돈 지급도 중단할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식탁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 취직한다고 그의 인생이 활짝 만개한다는 것은 아니다. 취직은 단지 기본적인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결혼을 해야 하고, 거주할 공간을 구해야 하는데, 알량한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늙은 사람이 많아지면 마을도 늙어간다...유치원이 경로당으로 바뀌고 초등학교는 폐쇄된다.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마을,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황폐해진다.


☞ 우리가 무언가에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다만 우리가 부여한 이름만큼의 쓸모만 갖는다. 원래의 무언가가 갖고 있던 무한한 가능성은 그 이름만큼으로 제한된다.


☞ 돈이 개입되면 인간관계는 투명해진다...돈을 매개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을 이해하고 분석하기가 쉽다. 세상이 무척이나 단순해 보인다.


☞ 고문이나 폭력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내 자유의지가 굴복하였다는 것에 인간은 좌절한다. 폭력의 고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아물지만 그 고통으로, 두려움으로 내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기억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자신을 괴롭힌다


☞ 배부르게 먹지는 못하더라도 나라에서 굶어 죽지 않게 밥은 먹여 주지 않을까?. 그는 국가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이렇게 잘 사는 나라에서 설마 굶어 죽기야 할까 하는~


☞ 하루치의 삶을 살아가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쓸데없는 데 돈을 쏟아붓고 정작 필요한 데 쓸 돈은 없어서 쩔쩔맨다.


☞ 그는 퇴직 후 경조사비부터 줄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의례적으로 하던 직원들의 경조사에 발길을 끊었다. 받아둔 게 있어 찔리는 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소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감당하기 어려웠다. 생존을 위해 비난은 감수하기로 했다.


☞ 진료 환자 대비 사망률이 특정 병원의 진료 수준을 말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단순하다. 치료가 까다로운 환자는 처음부터 받지 않는 병원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 양극화의 해소 방법...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물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보다 그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성공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도록 의식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 최저임금 인상을 ‘을들의 전쟁’으로 프레임 해놓고, 그들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뒤로 물러서서 구경만 한다. 자영업자들이 죽어난다고 비난을 하지만 일용직들의 빈곤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 그가 여든을 얼마 앞두고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장에는 그와 한 세월을 같이 보냈던 친구나 회사 동료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의 자식들을 아는 사람들만 들락거리며 망인에 대한 추모보다는 망인을 보낸 상주를 위로해주었다.


☞ 말기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아버지는 항암치료를 거부했다. 그날로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 울먹거리는 자식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며칠 후 아버지 앞으로 서너 박스의 택배가 왔다. 평소에 읽고 싶었지만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이라고 했다. 세트로 된 문학전집류가 있었고, 자본론이나 인구론 같은 말로만 듣던 고전들도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이 책들과 벗하다가 죽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게 내 인생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 세상의 모든 일이나 사건에 본질이나 사실은 없다. 다만 그걸 바라보고 전하는 사람의 해석이 있을 뿐이다. 전하는 사람이 열 명이면 동일한 사건은 열 개의 사실로 존재하게 된다.


☞ 길을 가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으면 그 줄 뒤에 서 있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길거리의 긴 줄에 대해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 그의 머릿속 기억들은 나이가 들면서 하나 둘 사라져 갔다. 머릿속에서 예전 기억이나 물건의 이름, 단어들을 떠올리는 게 점점 힘들어져갔다. 추상적인 개념을 지닌 단어야 그렇다 쳐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생활 도구들의 이름들, 예를 들면 도마, 자전거, 머그컵, 스탠드, 만년필, 빨래비누...같은 것들을 금방 떠올리지 못한다. 모습이나 생김새는 분명하게 떠오른다. 두 바퀴로 되어 있고 사람이 올라타서 페달을 돌리며 가는 자전거를 떠올리면서도 그걸 뭐라고 했더라 한참을 끙끙거린다.


☞ 꾀병을 부려 조퇴를 하고 텅빈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올 때의 그 느낌. 홀가분하다고도 할 수 있고 뭔가 나 혼자 내버려진 것 같기도 하고.


☞ 결혼을 한다는 것은 사회가 정해놓은 질서에 순응하겠다는 의사표시이다...사회가 만들어놓은 부조리들도 묵인해야 한다.


☞ 정신과 치료는 개인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의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측면이 많다. 사회의 구성원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 사회적으로 준수해야 할 규범들을 파괴할 우려가 있고, 이는 사회의 불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회에서는 관심이 없다.


☞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을 너무 값싸게 후려치는 데 익숙해졌다. 자신의 몸값을,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데 익숙해졌다. 온전한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면서 사회생활 하기가 피곤하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아이들은 조리사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나, 정작 교직원들은 그들을 ‘아줌마’라고 불렀다. 간혹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선생님들도 있었으나, 아무리 해도 귀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느 국회의원이 ‘그냥 밥하는 아줌마’라고 했다는 말도 들리던데....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사회가 희망이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한 번 실패했다고 모든 탈출구가 막혀버리는 사회가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


☞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다 보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 내 인생의 한구석에 흠집이 생길 수도 있을 테고, 그게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을 수도 있는 일이다...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위선이냐 아니냐는 일관성에 달려 있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이 아니다. 계속 나쁜 짓만 하는 사람을 위선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도 남몰래 나쁜 짓을 하면 그는 위선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나쁜 짓만 해온 사람보다 위선자를 더 욕한다.






⁂⁂ 대화가 아니라면, 그것도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면 절대로 속어를 쓰지 마라.

모름지기 속어는 수명이 길지 않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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