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39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아내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표정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한다. 상대가 그 표정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그는 아무런 양해도 없이 자신에게 반말하는 직장 선배에게 화가 났다. 자기는 친근하게 접근한다고 반말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하대하는 것을 그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초면에 반말하지 맙시다, 라고 할 수도 없었다. 술집에서 어쩌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얼굴을 마주할 회사 선배 직원이었다.


☞ 노동자나 임차인 등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법규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보다는 편법을 위한 가이드라인 구실을 하는 경우가 많다. 3개월 이상 고용을 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어 놓으면, 2개월 까지만 고용하고 해고하는 식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만큼 어리석을까. 모든 정책은 누군가의 경제적 이해를 반영한다는 말을 누가 했더라...


☞ 그는 통계를 믿지 않는다. 그에게 통계는 정치적 선전이나 구호와 비슷한, 신뢰할 수 없는 허구다...몸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통계를 믿지 않는다. 통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몸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통계를 믿는다고? 차라리 부자들은 본능적으로 돈을 싫어한다는 주장을 믿는 게 낫다.


☞ 그녀는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단어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둘 다 자기 몸과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기는 한데...누군가 그녀에게 '노동조합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노동자라 하고,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근로자라 한다고 설명해주면 그 차이를 이해하려나...


☞ 동료들끼리는 모두 ‘언니’로 호칭을 통일하였다. 별다른 직함들이 없었기 때문에 나이가 동생뻘로 보이는 직원에게도 언니라고 불렀다. 담당하고 있는 기계의 순번을 따서 ‘3번 언니’, ‘9번 언니’하는 식이었다.


☞ 사장은 무슨 말끝마다, 그래, 안 그래? 라고 덧붙였다. 정답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이지만 사장은 매번 그 정답을 확인한 후에야 다음 말을 이어갔다.


☞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그는 자신이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내 삶은 무엇이었나?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 나는 도대체 무얼 하기 위해 살아 있나? 나는 도대체 이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너무나 묻고 싶은 게 많아서 질문을 특정할 수 없었다. 질문이 명확하지 않으니 대답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 내가 가진 것 없이 가난하다는 것을 일부러 드러내놓고 증명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그냥 쳐다만 봐도 내가 밑바닥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 아이들은 자신과 상대방의 차이점을 빨리 찾아낸다...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그러나 어른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일단 적대감부터 갖는다.


☞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학교 비정규직의 처지에 무관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는 학교에 가보면, 정규직 교사들 말고도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일하고 있다.


☞ 부장은 취업을 준비 중인 자신의 아들이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않는 모양이다. 인턴들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대하는 걸 보면.


☞ 개인적인 편견은 사회적 승인을 받을 때 지배적인 생각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말도 안 되어 보이는 편견이더라도 반복되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도 있다...정치적 이념이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반복이다.


☞ 개별적인 고통은 언론의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대중의 흥미를 위해 난도질 당한다. 대중의 취향에 어울리게 날조되고 재구성된다.


☞ 그는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그에 맞는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믿고 있다.


☞ 오늘날 남녀간의 불륜이 일상화된 것은 인간의 본능과 맞지 않는 일부일처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불륜은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는 불합리한 사회적 제도 때문이다?


☞ 세상을 규제하는 온갖 질서들은 그것이 옳기 때문에, 진리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세상을 움직이는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왜 아시아인이나 중동인들이 아니라 흑인들이 노예가 되었을까? 흑인들이어야 할 사회 환경적 요인이 있었을까? 흑인들이 노예 사냥꾼들의 거주지로부터 가까이 살고 있었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 때문이라면?


☞ 호칭이 사람들의 인식을 규정하고 선입견을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보조자’라는 것은 잉여적인, 없어도 되는, 누군가의 시혜에 의해 존재하는, 자리의 존엄성이나 중요성이 떨어지는 그런 의미를 단어에 담고 있다.


☞ 자본주의 체제는 사회적 연대의식을 불편해한다. 이윤 동기를 실현하는 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전통적으로 구성원들의 연대의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던 장례식, 결혼식 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전으로 교환되는 서비스상품이 된다.


☞ 그는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는 방법을, ‘합리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요구했다...자신이 잘못한 것은 안다, 그렇다고 내가 손해를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해 달라...자신은 절대 손해를 볼 수 없다는, 그러니 다른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 달라,는 주장. 그는 그게 비합리적인 억지라는 것을 모른다. 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며, 합리적이라면 그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 문장은 머리카락과 같아서 빗을수록 빛이 난다. - 귀스타프 플로베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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