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가 발생했다면
얼마 전 모임에서 만난 사장님이 근심에 가득 찬 얼굴로, 제게 조심스레 질문을 하셨습니다.
"서변호사님, 내가 받을 돈이 있는데.. 진짜 나쁜 사람인데 이거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잠시 물어봐도 될까요."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냐고 되물으니, 사장님께서 공사를 해주고 공사대금을 못받았고, 이후 도급인은 잠적을 해버렸고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찾기 어려운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사기로 형사고소를 해야할지 고민했지만 법무사 상담을 받아보니 어려울 것 같아서 포기했다고 하시면서요.
그런데, 더욱 난감해 하시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받아야 할 돈이 '600만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600만원은 분명 적지 않은 돈이지만, 소송을 통해서 청구하기에는 인지대나 송달료, 특히 변호사비용을 감안했을 때 실익이 없지 않나 싶다는 것이지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은 저 역시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일단 사건을 맡아서 해결해보기로 했습니다.
도급인이 몇 차례나 사업체 이름을 바꾸고 비슷한 일을 저지르고 도망다니는 상태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변호사로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군요.
수임료는 최저로 약정하고, 사건을 맡아서 법리를 구상해봤습니다. 실제로 사업 명의자는 도급인의 여자친구였기 때문에 그 둘을 공동피고로 해서 소장을 작성했고, 머지않아 답변서가 송달되었습니다. 역시나 도급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도급인의 여자친구가 본인도 도급인에게 사기를 당했고 명의를 빌려준 것일 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한 것이었습니다.
법리상 명의를 빌려준 사람도 '명의대여자'로서 책임을 부담할 수 있는 사례에 해당했기 때문에, 사장님과 상의 하에 소송을 계속 진행했고, 결국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 과정이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인적사항이 불명확해서 수 차례 사실조회와 보정명령을 거쳤고, 정작 잘못한 도급인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도급인에 대한 형사고소를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사건이 잘 마무리되고 나서야, 사장님은 활짝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작 변호사 상담을 받고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을텐데, 아무리 적은 돈이라고 해도 이렇게 사기를 치면 안되는 일이잖습니까. 서변호사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사건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돈의 액수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신뢰를 저버린 상대방에게
적어도 그때 당신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음을
뒤늦게나마 알려주고자 했던
사장님의 '의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