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생신

by 화이불류

며칠 전 저녁 곧 다가올 어머니의 생신과 조카 녀석의 생일을 겸한 가족 모임이 있었다. 어머니의 79번째 생신이 다가오면서 지난날 어머니가 겪으셨던 삶의 내력을 떠올려 본다. 어머니는 지금의 외손자 녀석들에게 행하시는 애정만큼을, 어렸을 때의 나와 동생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서적 학대라기에는 지나친 말이겠지만 우리 가정이 정서적으로 기름지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자라온 나와 동생을 어머니는 늘 안타깝게 생각하셨고 애정을 표하고 싶었겠지만 그러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 당시는 대개가 그러했던 것 같다. 같은 반 친구가 살고 있던 이웃집 정서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당신이 처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오셨다.

어머니에게서 여걸 같은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지만, 삶을 대하는 데에는 투사 같은 분이셨다. 급성폐렴으로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셨고,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엔 줄곧 샐러리맨으로 살아오셨던 아버지가 지인의 권유로 모아두었던 거의 모든 재산을 털어 생전 해보지 못한 꽃 농사를 시작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망하고 말았다. 가족 모두가 실의에 빠졌고 동생은 절규하듯 울었고 갈 곳이 없게 된 처지에서도 어머니는 의연했다.
고교 시절 말썽꾼이거나 문제 학생은 아니었지만, 학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무기력했었던 나는 고3 담임에겐 성가신 존재였고 담임은 복학을 권고했지만 거절하였다. 단호한 거절 의사에 교감까지 동원된 자리에 오시게 된 어머니는 교감이 담임에게 건넨 “이분이 온전치 못한 학생의 어머니란 말입니까?”하는 말을 듣고서 “왜 우리 아들이 온전치 못한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까? 교감 선생님이 온전치 못하다고 하는 건 뭘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라며 분개하셨다.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그런 순간에 그렇게 응수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또 꽤 오랫동안 동생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고 극심한 우울증으로 삶의 의지를 포기하려 할 때는 어머니는 신과 목숨을 내건 싸움을 했다.

어머니는 우리 가정사의 숱한 역경과 풍파를 정면에서 맞섰고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분투하셨던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분이었다. 잔잔할 때가 아닌 폭풍이 몰아칠 때 가족이라는 이 자그만 배의 키를 움켜쥔 이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으셨고, 어머니의 간절한 신앙은 우리 가정의 혹독한 질곡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했다.

기독교에서 구원의 내용은 삶을 긍정하는 것이라 한다.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삶을 낙관한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절망의 상태를 그대로 용인하라는 뜻일 수는 없다. 신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목적은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시련과 절망의 극복은 인간완성의 정점이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에 질문을 던지기를 중단하고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혹한 운명의 질곡에서 삶을 원망하며 그 의미를 회의(懷疑)하는 것이 아니라 삶 앞에 선 자신이 떳떳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머니는 그러셨다. 어머니의 발자취는 우리가 물려받을 위대한 유산이다.
내게도 그런 어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을까?
나에겐 시련을 마주할 용기와 나를 둘러싼 이 필연의 질곡에서 나를 구원할 만한 신앙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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