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by 화이불류

어제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려 전화했다. 독감 예방주사 후유증에다 피곤하셔서인지 목소리가 갈라지고 가라앉았다.

“와 전화했드노?”

“사랑하는 울 어머니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지.”

“글 쓰는 건 재밌고? 나에 대해서 쓸끼라메? 뭐라 쓸 낀데?”

“이럭저럭……․ 근데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직 몬 쓰겠다.”

내가 아는 한 어머니는 평생 이름 있는 브랜드 옷을 갖추신 적이 없다. 소위 명품 옷이 아님에도 내 나이와 맞먹는 옷들도 있었고, 빨랫줄엔 닳고 해어진 속옷이 널려있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머니는 신실한 기독교인이면서 참 겸허한 분이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를 존경하는 여러 이유 중에 우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머니를 처음부터 겸허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춘기 넘어 점점 머리가 굵어져 ‘어머니’라는 자격 뒤에 있는 한 인간을 안 순간부터였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가졌던 호의적 환상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라는 완고함으로 무장된 자아 뒤에 감춘 허물과 오점을 인정하기보다는 기어이 두둔하려는 태도 때문이었다.

때때로 어머니와 격앙된 감정으로 다툴 때, 항상 잘못은 거의 나에게만 있는 것 같았다. 사춘기 비록 어린 나이지만 사리 분별을 못 할 만큼 어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요구나 어머니의 태도에 대한 불만 제기는 ‘어머니’라는 권위에 의해 묵살되었다. 다툼이 끝나고 난 뒤 억눌린 나의 감정은 늘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았다. 그런 어머니의 태도가 아들에게 얼마나 큰 실망과 노여움을 안겨주는지 격앙된 감정으로 질타하곤 했다.

어머니로서는 비정한 아들에 대한 서운함과 ‘어머니’라는 권위에 대드는 아들의 무례와 오만불손함에 대한 노여움이 컸을 것이다. 어머니로서는 당신이 사랑하고 힘써 키웠다고 생각하는 아들이 자신을 혐오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심한 자괴감과 절망감을 느끼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더욱 존경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머니’라는 완고한 자격 뒤에 있는 허물 많은 인간을 아들 앞에서 인정할 때, 더욱 존경할 뿐만 아니라 해소할 길 없는 노여움이 풀릴 거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말이 없으셨다. 아들의 말을 반박하기보다 수긍하시는 것 같았다. 노여움도 가라앉히셨다. 어머니가 기꺼이 그러실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당신이 지닌 신앙의 영향이었을 거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신 앞에 있는 자신의 적나라함을 반추하셨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나를 비로소 정신적으로 독립된 한 인격으로 인정하기 시작하셨다.

기독교 신앙은 어머니와 결코 뗄 수가 없다. 어머니는 항상 자신을 신과 성경에 견주어 살아오신 분이다. 우리 가정사의 험준한 질곡과 커다란 고비들을 홀로 맞서며 가정과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도 오롯이 신앙의 힘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차별이나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셨다. 아무리 누추하고 남루한 차림새의 사람이라도 허투루 대하는 법이 없었다. 연말이면 배달 기사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에 짧은 글귀를 써서 주셨다. 인터넷 설치 기사가 방문했을 때는 과일을 깎고 차를 끓여 대접했다.

“아이고 어머니 이러시면 안 됩니더. 우리 이런 거 몬 받게 돼 있습니더.”

“하이고 그런 게 어딨 능교? 내는 우리 집에 오는 손님 그냥은 몬 보낸다.”

스승의 날에는 조카의 학교 선생님과 돌봄 선생님, 교회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손 편지를 써서 작은 선물을 하시던 것이 연례행사였다. 선생님 중에는 감동해서 어머니께 연락이 오는 분들도 있었다. 교회에서는 줄곧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의 구역장을 맡으면서 그들을 섬기셨다. 그들을 돌보고 도움을 주시고 때로는 나무라기도 하셨다.

어머니가 살아오면서 보여주신 모습은 남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보다 큰 무형의 유산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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