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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Mer 라메르 Oct 19. 2024

[Episode 2] 방어

방어력 상승은 절박한 외침이다

 [ 행복한 아무 말 대잔치 2 ]


하루에 한 번

일상을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잊혀 가는 것을 되새기며

흘러가고 사라져 가는 생각에서

하루에 한 번은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


행복한 아무 말 대잔치



방어


사람은 연륜이 쌓이면서 생각이 여유로워지고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너그러워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예전에는 두려움 없이 했던 일들도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더 두려워지게 될 때가 있다.

 

또 그 두려움이 가끔은 다른 감정들보다 앞서 튀어나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그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겠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 없고 두려울 때

자기 자신을 더욱 포장해서 타인에게 자신이 더 강한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사실 그것은 나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고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일 뿐이다.


나 스스로가 두려우니

나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 외부의 어떤 위험 자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자신을 더욱 과장하고, 세게 보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세상의 어떤 것으로부터 받았던 과거의 상처를

더 이상은 받고 싶지 않은 방어 기질이기도 하며

되풀이되는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거다.


약한 이는 강한 이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고

강한 이가 약한 이를 누르려할 때

약한 이의 마음에는 그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본능이다.


자신 없는 사람은 나 스스로를 작게 느끼기 때문에

잘 보이고 싶은 상대에게 자신을 더욱 과장된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 역시 본능이다.




다시는 나를 힘들게 했던 그 '고통'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

다시는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

그 '회피'의 마음으로부터 먼저 나의 겉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 두려운 존재인 타인에게

틈을 주지 않음으로써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 마'를 외치게 된다.


그리고 그 '다가오지 마'는

'나는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나를 좀 이해하고 알아 봐 줘.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이만 나를 만져 줘'라는

절박한 외침으로 부르짖는 행동인 거다.


사실은 누구보다 약한 사람이다.

겉으로 강한 척하지만 누구보다 상처에 약하고

누구보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다.


그런 인간의 나약함을 표현하는 방식을

강함으로 포장하여

세월로부터,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방어력을 상승시켜

나를 보호하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인 거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세월의 풍파를 여러 번, 수없이 맞았다고 해서

다음 풍파를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상처는 계속해서 받는다고 다음 상처에 대비되지 않는다.

그저 아파하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방식만 바꿔 가며

괜찮은 척, 그렇게 속으로만 절규를 외칠 뿐이다.

그러다 그 힘마저 남아있지 못할 땐 그것을 회피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무너져 버릴 거다.


아무리 겉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도 계속된 상처에 버텨낼 장사는 없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그에 대한 방어 기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는 그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방어가 시작되면

방어력은 더욱 상승될 거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날카로워져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마구 내뱉게도 된다.


상처는 정도가 다르게 찾아온다 해도 나아지지 않고

그 상처와 힘듦은 쉽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상처가 아물었다고 그 기억흔적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약한 이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지 말자.

방어력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해 보자.


나 자신이 타인에게 기분 좋은 자극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내 존재가 위험하고 불편한 자극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 타인은 내게 날을 세우는 게 당연하다.


나에게 날을 세운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내가 불편한 요소를 줬다는 말이기도 하다.

타인의 아픔에 소금을 뿌리지 말자.

타인에게 상처 주지 말자.


그에게 내가 불편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고

그가 스스로 나에게 날을 내릴 수 있도록

그를 이해해 주며

천천히 어루만져 주자.


그리고 안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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