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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 공감 능력이 없는...

공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과는...

by La Mer 라메르

[ 행복한 아무 말 대잔치 5 ]


하루에 한 번

일상을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잊혀 가는 것을 되새기며

흘러가고 사라져 가는 생각에서

하루에 한 번은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


행복한 아무 말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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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

공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과는...


극단적으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공감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서

다른 사람의 아픔 따위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의외로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 꽤 많이 있다.

'극 F'인 나로서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지만

나 혼자 그들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든 맞춰 주려 노력했었다.


그들이 그러한 행동과 생각을 하는 것에도

다 이유나 상황이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지 못해서,

사랑을 받았으나 잘못된 방식이나 방향으로 습득한 감정이라서,

타인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부족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과해서,

결핍된 감정이나 부족한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 등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에는 어떤 식으로든 원인이 있었을 거고

결핍이든, 잘못된 방식으로의 습득이든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안쓰럽고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여운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입장에서

상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고민하고, 이해하려 애썼던 것 같다.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


윤리 시간에 배웠던 성선설성악설, 성무선악설을 떠올려 봤을 때

나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성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후천적으로 더 많이 바뀔 수 있다는 입장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데 그 인간의 타고난 성품은

조금은 이기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인성을 학습하여

'선해진다'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 중에서는

성악설이 가미된 성무선악설에 가까운 생각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에게는 타고난 성품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러한 성품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아니, 처음부터 너무 약한 존재로 태어나서인지

조금은 이기적인 상태로 태어나는 게 맞는 것 같다.


갓난아이를 떠올려 보면

'내가 배고프니 나를 돌보는 사람을 괴롭히면서'까지

'밥을 달라'는 자신의 요구를 '울음'이라는 무기로 외쳐대고

타인의 상태야 어떻든 내 요구를 먼저 내세우게 된다.


그것만 봐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이 아니고서는

자기 자신이 최우선이고

자기 자신의 욕구가 충족이 된 후에야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게 본능이고 당연한 본성일 거다.


그러다가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상대에 대한 배려를 배우고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습득하고 교육받아

사회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다.




'사회화'된 인간은 자신이 배운 방식과 생각으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인간관계에서 그 행동을 상황과 관계에 맞게 표현하게 된다.

그 표현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인 학습을 통해 얻어진 정보와 얽혀

다른 이를 대하는 방식에서 나오게 된다.


성악설이 맞든, 성선설이 맞든, 성무선악설이 맞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다만,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욕구가 최우선일 수는 있으나

'사회적인 인간'이라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그 욕구도 자제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배려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 자제배려관심사랑이 더해져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랑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욕구를 뛰어넘어 표현하고

어떤 때에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타인의 감정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된다.

그게 사랑이고, 관심이고, 나아가 행복이다.


이기적이고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공감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누군가를 자신처럼 사랑할 줄 알고

배려관심을 통해 스스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

공감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

그건 지금까지 나한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런 사람들만 만나온 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보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 공감 능력을 발휘할 사람을 좋아하고

그렇기에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그들의 곁에 두기 위해

더욱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그 덫에 걸려들게 만든다.


결국,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과 만나

지치고 힘들어지고 그 악순환은 계속된다.

처음에는 그들의 습성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언변과 친절함에 속아

나 스스로가 공감 능력이 많으니

다른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을 거란 착각으로

그들의 행동과 말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별 뜻 없이 했던 그들의 친절에 그렇게 마음을 주고 그들을 지켜준다.

그러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때는 이미 마음을 다 내주었기에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결이 비슷한 사람과 만나는 게 필요하다.

더 이상 이기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이기심으로

공감 능력이 있는 이들을 고통에 머물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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