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신이라고?!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순간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갑자기 발생해버리는 것이다. 나 또한 살면서 갑작스러운 순간을 맞이했을 때가 종종 있었지만 이번 일은 그 경우가 달랐던 게 나의 현재 삶을 바꿀만한 일이었다.
"임신이네요. 초음파상으로 5주 정도로 보이는데... 미혼이신가요?"
"아니요. 결혼했어요."
"아~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내가 미혼일 거란 생각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임신을 알리던 의사는 결혼했다는 나의 말에 이내 밝은 목소리로 축하인사를 건넸고 옆에서 진료 보조하던 선생님도 높은 톤의 목소리로 축하인사를 해주었다.
그때까지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의사의 설명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속으로 ‘헐... 망했다’고 생각했던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결혼 5년 차, 주위에서 아이 계획에 대해 물어본 적도 있었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있었지만 아직 계획은 없는 상태였다. 딩크는 아니었지만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아주 먼 미래이고 어쩌면 아이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 굳이 말한다면 반딩크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우리는 현재 결혼생활에 만족했고 둘 다 아이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캠핑카를 사서 키우는 강아지를 데리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준비하려던 찰나였다.
산부인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나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도 힘든데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나의 신체변화, 직장생활 모든 게 걱정거리였다. 임신의 기쁨보다는 걱정과 근심이 먼저 앞섰다.
그중 가장 큰 두려움은 나의 변화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몸의 변화. 나는 1년 전 다이어트로 10kg가량 감량하고 40대 초반의 몸무게를 유지 중이었다. 다이어트 후 강박처럼 식단과 운동으로 몸무게를 유지하던 상태라 어처구니없지만 임신을 알게 되고 가장 큰 걱정이 살찌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식당에 가면 주위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 뛰어다니는 소리가 듣기 싫었고 옆에서 ‘아이들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하는 말도 딱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키우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기 위해서 일부러 노키즈존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고 하던데 글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정말 의문이었다.
직장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일에 크게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육아휴직이나 사직을 하자니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의 조건이 너무 아까웠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타지로 이사 오면서 한번 이직을 한 상황이었고 주위에 아기를 봐줄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임신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많았지만 임신을 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웠지만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것도 없이 결국은 받아들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