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일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며칠 동안은 직장에 알리지 않고 출근했다.
임신주수로 5주 정도밖에 안 된 상태라서 초기에는 잘못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괜히 먼저 알리는 게 조심스러워서 적어도 7-8주 정도 지난 후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한 몸 상태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그날은 코로나로 인한 특별한 업무가 있었다. 원래는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는데 그날은 2시간 정도 바깥에 서서 업무를 해야 했다.
8월이라 더운 여름이었는데 그곳이 건물 입구라서 에어컨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았고 조금 더운 상태였다. 거기에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서서 일을 했는데 1시간 반 정도가 지나고 갑자기 현기증이 나면서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앞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2시간마다 교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시간을 다 채워야 했지만 도저히 안 되겠어서 옆에 다른 직원에게 상태를 말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가만히 쉬다 보니 어지럼증이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괜찮아졌다.
그런 상황을 겪고 나니 사무실에 바로 임신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마다 2시간씩 나가서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또 그런 증상을 겪고 싶지 않았고 돌이켜보면 코로나 관련 업무라 더 불안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날 팀장님에게 면담 요청을 한 후 임신 사실을 알리고 해당 업무에서 제외되었다.
나의 임신 소식을 듣고 모두 축하해주었지만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업무에서 제외되면서 나 대신 다른 사람이 한 번 더 바깥 근무를 서야 했다. 특히나 우리 팀은 팀원이 적어서 그 순번이 빨리 돌아왔는데 나 때문에 더 빠르게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 반복되는 입덧과 어지럼증으로 차라리 빨리 알리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임산부 단축근무라는 제도가 있어서 임신한 경우 2시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데 임신 초기에는 12주 이내로 임신 후기에는 36주 이후부터 사용할 수 있어서 임신 사실을 최대한 빨리 알릴수록 단축근무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나도 6주 때 알렸으니 5주는 단축근무를 사용한 셈이었다.
임신한 상태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건 힘들었다.
임신으로 인한 불평등은 딱히 없었고 나름대로 주위에서 배려도 많이 해주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다 보니 알게 모르게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최대한 팀에 피해 가지 않게 최선을 다했지만 '임산부는 일을 잘 못한다'라고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임신을 하고 몸 컨디션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임신 초기에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었다. 임신 초기 대부분의 날들이 입덧으로 인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속이 울렁거렸고 밥을 넘기기 어려웠다. 결혼 후 처음으로 엄마가 해준 반찬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 근처 반찬가게에 가서 반찬을 사다가 도시락을 싸서 출근했지만 거의 못 먹는 일이 태반이었고 입덧으로 인해 살이 빠질 정도였다.
게다가 몸이 너무 피곤했다. 초기에 단축근무로 2시간 일찍 퇴근하는데도 집에 오면 곯아떨어지곤 했다. 나는 원래 밤에 12, 1시 정도에 자는 편이었는데 임신 후에는 초저녁부터 잠이 들곤 했다.
20대 초반, 직장 선배가 임신을 하면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것 때문에 나에게 업무가 더 주어지면 싫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직접 임산부가 되어보니 알았다. 임산부의 몸으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너무 불편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