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이 Oct 15. 2024

#연작소설 만들기 (6)최애의 호구

<세 단어 습작소>(랜덤 단어 3개) 두근, 낭만, 세계 

띵동! 팬레터의 답장이 도착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불꽃소녀님.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연습생 시절에, 짜인 일정표대로 사는 삶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데뷔를 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고, 지방에서 올라와 생활비는 계속 나가고.. 알지 못하는 미래가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도 그때 유일하게 힘이 돼줬던 건 음악이었어요. 자기 전에 이어폰 꽂고 몰래 들었던 음악들은 저에게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줬거든요. 


낭만이 밥은 먹여주지 않았지만 숨은 쉬게 해 줬던 것 같아요. 


학교- 학원 - 집 3개의 공간을 돌며 하루하루 지내는 세계는 분명 갑갑할 거예요. 


그래도 제 음악이 불꽃소녀 님에게..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제 노래를 듣고 꿈을 꾸고, 낭만을 잃지 않는다면! 분명 불꽃소녀님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소중한 마음을 전해줘서 고마워요 불꽃 소녀님을 응원해요! ] 



H는 listening love 그 자체였다. 유일하게 내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나의 수줍은 인사와 팬심은, 적어도 3 문장 이상 되는 답장으로 돌아왔고 3달은 걸릴 줄 알았던 기다림은 

3주면 충분했다. 


H는 약속을 지켰다. 비록 용돈의 절반 이상을 써야 답장을 받을 수 있는 팬레터 서비스였지만 

나는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친구들과 함께 놀러 다니며 쓰는 돈보다, 팬레터를 위해  돈을 쓰는 게 훨씬 합리적이었다.


그때부터 영상 속 H의 눈에 내가 보였다. 그의 눈에 비친 불꽃은 나였고

나는 그렇게 내 최애와 함께 타올랐다. 


나는 H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H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빛이었다. 


물론 H에게 보내는 팬레터는 카톡 '나와의 서랍장'에 차곡차곡 쌓여 갔지만 

그 메시지는 용돈이 생기면 조금씩 보낼 수 있었다. 


글자수 300BIT를 맞춰 고치고 또 고쳐가며 당신의 노래가, 당신의 춤이, 당신의 목소리가, 당신의 웃음이 

오늘 나에게 어떻게 기쁨을 줬는지 차례차례 써 내려갔다.


나는 적어도 다른 팬들과 달랐다. 

H에게 사랑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무작정 멋있다고 좋다고 사랑한다는 등 유치한 말로 편지를 전하지 않았다. 


그저 최애가 있음으로 내 삶이 어떻게 반짝이고 있는지,

최애가 생김으로써 내가 얼마나 지금 현재를 버티게 됐는지, 

최애의 음악이 어느 순간에 떠올랐는지

그래서 최애의 존재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써 내려갔다.


나에겐 최애가 필요했다. 차애도 안 됐다. 최애여야만 했다.

그래야 아직, 이 삶이 재미있다고, 살아갈만하다고 믿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순수한 최애의 팬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연작소설 만들기 (5) 최애의 호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