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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17-노년을 맞이한 엄마를 보는 딸

#엄마17-같은 엄마, 다른 엄마(짧은 에세이적 소설) #다정한무관심

by 산책이

나는 엄마가 사라질 날들이 무섭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힘겹다.

나는 엄마손에서 컸다. 아빠손이라고 하기엔, 아빠의 손길을 받아본 적이 없고

아빠와의 일대일 시간의 기억도 없다.

그래서 아빠와의 헤어짐보다는 엄마와의 헤어짐이 더 두렵다.


할머니가 두 분 있으셨지만, 다른 친척들과 살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 할머니의 사랑을 받았던 기억도 없다.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렇게 많이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 한 조각 있었더라면,

가장 가까운 어른과의 이별을 먼저 연습이라도 해봤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나는 순수하게 엄마손에서 컸고

내가 아는 가장 가까운 어른은 엄마였으며, 엄마의 말과 생각이 내가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그 프레임 그대로 세상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성인이 되고, 열심히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책 속의 글귀를 읽고

20살부터 등록금 이외의 모든 생활비를 벌어서 썼다.

자취하는 것보다 같이 사는 게 훨씬 싸다는 그 말도 듣고 싶지 않아

생활비를 꼬박꼬박 20만 원씩 냈고, 옷을 드라이해서 가져다주면 드라이비도 꼬박꼬박 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엄마의 사고와 감정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야 엄마는 엄마생각이고, 나는 내 생각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그냥 우린 다른 거야. 엄마와 딸이 꼭 같을 순 없어. 이 명제를 나는 그렇게 스스로 얻어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엄마가 내 머릿속에 심어 넣은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안돼" , "네가 잘못한 거지" 등

엄마였다면 지금의 나를 그렇게 판단했을 거야라고 자동으로 생각한다.

그게 엄마의 목소리라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물론 그 목소리가 항상 맞고, 틀린 건 아니지만 그만큼 나는


엄마로부터 열심히 독립하고자 했어도

여전히

엄마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은 딸이다.




그런 엄마가 사라지는 건, 내 세상 한쪽 면의 소멸처럼 두렵고 무섭다.

무엇보다 내가 독립을 하려고 노력했던 거지,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무서워하는 쫄보와 겁보가 되지 않고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엄마와의 이별 전에 반드시 찾아올, 아니면 어쩌면

이미 찾아온 엄마의 노년을 준비한다.


엄마가 엄마의 노년을 준비하듯

나는 딸로서 엄마의 노년을 준비한다.


엄마가 가는 길이, 곧 내가 가는 길이라 생각하고

엄마의 신체적 변화, 인지적 변화, 주변환경의 변화

그리고 그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한다.


바꾸려 하기보다,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내가 엄마를 훈계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나는 적어도 다정한 딸이 되고 싶어서, 무뚝뚝해도 배려하는 딸이 되고 싶어서

키오스크 하는 법을 알려주고,

스타벅스에서 주문하는 법을 알려주고

엄마의 평일 산책메이트 이야기를 들어주고

엄마의 마음을 가끔씩 물어봐준다.


매번 다정하지는 못하지만, 노력한다.

그런 여유가 있는 딸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웰다잉과 노년에 관한 책을 꾸준히 읽는 편이다.

이번에 읽은 '노년의 삶'이라는 책의 몇 구절을 남겨본다.


#신체와 인지기능이 저하된 나이 든 부모가 그렇게 높은 기대치를 맞추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 어쩐지, 내가 엄마를 아직도 50대로만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지 70대를 바라보는 엄마에게 50대의

기준으로 높은 기대치를 가졌던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노인과 젊은이는 주변을 정리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다.

젊은이들은 깔끔한 것을 좋아하여 가능하면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서랍 속에 넣어 보관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지만 노인들은 눈에 안 보이면 찾기 어려워 자주 쓰는 물건들을 서랍장이나 화장대 위에 늘어놓아 대단히 산만하며 어질러져 있다. 정리정돈을 잘하고 살았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물건을 찾기 힘들어짐에 따라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깔끔했던 엄마가 씻는 것도, 주변 정리도 다 귀찮아하는 모습이 이런 변화일 수 있구나를 읽고 나니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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