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약혼한 신데렐라는 일주일 만에 폭식증에 걸렸다. 걷잡을 수 없이 많이 먹고 바로 토하기를 반복하는 증상이다. “여기가 좀 통통해 보이지 않나요, 그렇죠?” 결혼 전에 왕자가 신데렐라의 허리에 손을 얹고 퉁명스레 던진 한 마디에 신데렐라는 속에서 뭔가 끌어 올랐다. 왕실에 들어간다는 설렘이나 긴장 같은 것이었을까?
나중에 고백했듯이, 신데렐라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쪼그라들었다’. ‘통통해 보였던’ 허리는 웨딩드레스를 맞추는 날 29인치에서 결혼식 날 23.5인치로 줄었다. 다섯 달 만에 5.5인치나 ‘쪼그라든’ 것이다. 결혼 하루 전 날, ‘매우 심한 폭식증’을 겪은 신데렐라는 가여운 ‘앵무새처럼 아팠다’.
‘결혼식은 상당히 붐볐다’. 신데렐라는 ‘세 사람이 함께 한 결혼’이니 당연하지 않냐고 자조했다. 왕자가 다른 여인과 오랜 불륜을 계속 이어갔기 때문이다.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아내의 질문에도, 결혼식 날 ‘아내를 사랑하겠습니까?’ 묻는 주교의 질문에도 왕자의 대답은 겉돌았다. “사랑합니다. 그게 어떤 의미든 간에 말이죠.”
왕자는 괜한 걸 트집잡는다며 신데렐라를 몰아 붙였고, 여왕은 아들이 ‘구제불능’이라며 말문을 닫았다. 카메라 앞에 행복한 ‘쇼윈도 부부’로 찍히기 위해 왕실은 그녀의 말 한 마디와 걸음 한 발짝마다 고집스런 전통을 요구했고, 신데렐라는 그들이 ‘왕세자비 자리에 어울리는 인형’을 골랐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공식 만찬이 열릴 때마다 신데렐라는 왕실이 정해준 드레스를 입고 인형처럼 앉아 있다가 남몰래 화장실을 찾아 변기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먹어도 바로 게워내는 그녀를 보고 왕자가 질책했다. “요리사들을 생각해서 토하지 마세요.” 하지만 신데렐라에게 구토는 잠시나마 왕실의 긴장과 압박을 후련하게 게워내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해서 울고불고 자해까지 했는데 돌아오는 답은 죄다 원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 보세요. 다들 내가 관심 받고 싶어서 양치기소년처럼 거짓말을 한다고 여겼죠. 하지만 빨리 건강해져 아내로, 엄마로, 왕세자비로 역할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난 정말 울부짖고 있었어요.” 신데렐라는 왕실을 떠났다.
폭식증에서 벗어나는데 10년 남짓 걸렸을까? 왕세자비라는 옥죄는 옷을 벗어 버린 신데렐라는 금세 세계적인 명사가 됐다. AIDS 환자를 돕고, 지뢰를 제거하는 봉사활동으로 공감을 얻은 것은 물론 당당한 사랑을 꿈꾸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거듭났다. 전세는 역전됐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남편 찰스’보다 ‘찰스 왕세자의 비 다이애나’가 아닌, 다이애나 스펜서가 더 유명해졌다.
신데렐라의 아버지 스펜서 백작은 셋째 딸을 낳자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주었다. 대를 이을 아들이 간절했던 아버지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용맹한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Diana)를 고른 것이다. 현실은 신화와 달랐다.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사냥의 여신’은 파파라치들이 가장 노리는 ‘사냥감’이 됐다. 카메라에 쫓기기만 하던 ‘사냥의 여신’은 1997년 뜻밖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