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서펀타인 연못에 1실링짜리 동전을 던진 적이 있다. 그밖에는 다른 어떤 것도 던진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자기 몸을 던졌다. 우리는 계속 살아가겠지. 우리는 계속 늙어가겠지. 그녀에게도 지켜내고 싶은 중심의 뭔가가 있겠지만, 쓸데없이 복잡한 일상에서 잡담에 파묻히고 거짓말에 더럽혀지면서 녹아 없어졌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중심을 지켜냈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주인공은 직접 준비한 저녁 파티에서, 1차 세계대전에서 정신병을 얻은 퇴역군인 셉티머스가 요양원에 가두려는 의사를 피해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전을 던지는 연못에 어떻게 자기 몸을 던질 수 있을까? ‘의식의 흐름’은 이어졌다. ‘죽음은 그것을 지켜내려는 저항이다. 죽음은 그 중심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소통의 시도다.’
사실, 작가도 그랬다. 13살에 어머니가 죽은 충격으로 정신이상 증세가 생겼고, 돌봐주던 의붓언니도 2년 뒤에 죽었다. 6살 때부터 집적거리던 의붓오빠와 그 사촌들이 그 뒤로 더 집요한 추행을 거듭했다. 22살에 아버지가 앓다가 죽고, 2년 뒤 의지하던 오빠마저 죽어버렸다. 10년새 가족 4명을 잃었다. 작가는 자서전에 ‘날개도 채 펴지 못한 애벌레’가 치명상을 입었다고 썼다.
다친 ‘애벌레’는 ‘중심을 지켜내기’ 위해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수면제를 먹기도 하고 창 밖으로 몸을 던지기도 했다. 그녀는 정말 미쳤을까?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성과 극기심이 유달리 강했던 그녀는 ‘미쳤다’기보다 견디기 힘든 증상으로 너무 오래 고통 받았고 그 증상과 싸우기 위해 ‘미친 듯이’ 몸부림친 게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에게 사색과 글쓰기는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가부장적이고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사색과 글쓰기에 집중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산책하거나 도서관에 갈 때 시도 때도 없이 방해 받으면서 사색의 ‘작은 물고기’가 금세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이 소설이나 시를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문에 자물쇠가 달린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절실하게 정말 절실하게 그녀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다. 자신의 병에 대처하는 방법은 사색하고 글을 쓰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안으로 안으로 가라앉고 가라앉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자기만의 방’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 방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는 것이 확실해요. 그 끔찍한 시간들을 다시 되풀이 할 순 없어요.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거에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고 집중력을 잃었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어요.’
환갑을 앞둔 1941년 3월, 버지니아 울프는 유서를 남겨놓고 지팡이를 짚으며 산책을 나갔다. 봄이 되어 물이 불어난 우즈 강을 보며, 큼직한 돌을 주워 침착하게 모피코트에 넣었다. 곧 그녀는 아래로 가라앉았고 지팡이는 물 위로 떠올랐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에 도착했을까?
울프가 치를 떨며 두려워했던, ‘죽음보다 삶이 더 끔찍한 순간’은 도대체 언제였을까? 어머니가 죽자 실성한 그녀에게 의사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해로우니 쉬면서 산책하라고 처방했을 때다. 증상이 심하다고 요양원이나 수용소에 보내려 할 때마다 극도의 두려움으로 발악했다. 유서에서 그녀는 남편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내가 이제 한 자도 쓸 수 없고 한 줄도 읽을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 겁니다’.